첫 번째 작은 세상
연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는 고민이 조금 더 깊어졌다. 연재는 어떤 순서로 해야 할까, 어떤 세상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라는 고민이랄까.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가 본 세상은 한정이 되어있어서 그 세상만 함께 보면 이 연재는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곳을 다닌 것 같아 보이지만 아직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한 사람이다. 고작 국내를 다닌 것도 얼마 되지 않고 심지어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다녀봤다는 장소도 다녀오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연재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서 본모습들을 통해 일상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재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첫 세상으로 보여주고 싶은 곳은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곳인 대전의 첫 관문인 대전역이다.
첫 열차가 떠나버리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아서 열차가 남기고 간 설렘과 초조함이 섞여 있는 여운을 맛본다. 이 시간에 이렇게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책을 통해서 전해지는 글자들의 나열과는 다른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
역의 밖은 새벽 시장이 정점을 지나 파장을 향해 간다.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이 장소를 지켜온 사람들. 벌써부터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끝없는 생활력이 엿보이는 장면 앞에서 숙연해진다.
세상은 내가 하루를 인지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된다. 나는 그 시작의 시간에 아직도 잠자리에서 헤매며 삶의 노력을 논한다. 게으른 돼지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한 것은 없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경외감이 솟는다. 어떤 이들의 직업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또는 사회적 지위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문제 따위는 이곳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그 세상을 위해 자신들의 땀을 매일을 위해 받치는 무대의 주인공들이었다.
2024년 3월 10일
글, 사진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