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작은 세상
용산과 서울역 사이, 남영역이 있다. 남영역에서 내리면 특별한 무엇이 있을까.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할 때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영역을 지나칠 때도 늘 궁금했다.
나는 여행이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겪는 것을 다 여행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남영역 아래는 어디로 이어질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어느 봄날, 남영역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며 만난 작은 카페에서 사진 여행을 시작해 본다. 이곳에서부터 길을 위로 잡아서 올라가며 여행을 할 것이라고 동반한 사진작가님께서 말씀을 해주신다.
빨간 스쿠터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빨간 스쿠터를 배경으로 한 남산타워가 평일 오전을 여유롭게 만들어버렸다.
남영동은 오랜 동네의 느낌이 나서 대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내가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해 줘서 길을 걷고 사진을 찍는데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이질감이 드는 곳은 카메라를 꺼내서 누군가를 향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므로(곧 익숙해지지만) 여행의 설렘은 더하지만, 사진을 찍는 것에는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용산고등학교 앞의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났다. 평범한 일상인데, 평범하지 않은 듯 한 모습에서 마음이 끌렸다. 이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일상 여행의 가장 최고가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 나는 이발소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릴 적 나를 만나며 높은 건물이 아닌 익숙한 건물들에 시선을 맞추면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남산타워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남산 타워가 아니었기에 나는 다른 방향을 잡아 해방촌으로 내려온다.
전선이 얽히고설켜진 전신주와 붉은 벽돌의 집이 내게는 차라리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분명 어떤 이에게는 그곳이 불편함으로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처음 그곳을 방문하는 이의 눈에는 그곳이 낯설거나 혹은 나쁘거나 당장 재건축을 해야 만한다거나 하는 버려야 할 것들이 아닌 어쩌면 잘 보수해서 보전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드라마의 세트장처럼 눈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과 눈앞의 안테나는 눈앞의 안테나가 더 높게만 보였다. 그만큼 어디에 여행의 중심을 보고자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다. 비록 산 위에 있는 동네지만 나는 외려 새 건물들이 모여있는 고층숲보다 더 멋지게 느껴졌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의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이곳만의 정서가 따스하게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한다.
해방촌에는 이런 풍경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보는 빈도도 눈에 띄게 늘은 마당에 여기는 해방촌이고 이태원과 가까운 곳이지 않은가.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마주 앉는 모습이 하나 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평일 낮, 한가한 듯하면서도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 눈에 보인다. 이 것을 여유라고 불러야 좋을지, 아니면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장면들의 눈에 비치는 것이 좋다.
노란 바이크와 카페의 조합이 참 좋다.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버린 카페와 그 사이 골목길, 그리고 그 골목길을 오르는 사람. 이렇게 보전되고 발전하고 있다면 이 것은 과연 잘 절충된 발전일까.
음료 한 잔을 들고서 그늘에서 쉬고 있는 한 남자분의 모습이 해방촌과 이태원의 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남아있고 싶어 하는 마음도 늘 가슴 한편에는 가지고 있다.
해방촌이나 이태원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누군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발전을 시키고 싶지만, 그곳을 살아가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곳을 지키고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해방촌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여행은 산을 넘고 돌아와 끝이 나면서 묘한 감정을 남겼다. 재배발과 보전 사이의 가장 극적인 절충점은 어디일까. 가고 싶은 것과 쉬고 싶은 것이 만난 그 어디인가에 절충점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멋진 여행의 장소가 되지 않을까.
2024년 5월 5일
글, 사진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