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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28. 2024

서울, 을지로...
낮과 밤의 다른 그곳에선

여덟 번째 작은 세상

그곳의 역량을 모두 더하면 로켓도 만들 수가 있다고 하는 곳이 대한민국에는 두 군데가 있다. 그 한 군데는 문래동이고, 또 한 군데는 을지로이다. 그렇다. 을지로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그런데 을지로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점점 위치해 있던 작은 공장들이 밀려서 나가고, 그 자리를 곧 아파트를 비롯한 건물들이 대체한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지만 그곳의 사장님들은 난처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평생을 바쳐 일했던 곳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지방러 중에서도 서울을 자기 방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사람도 있지만, 일 년에 한 번이나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나 같은 완전 촌사람도 있다. 을지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도 몇 년이 걸려서야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가는 그런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을지로가 힙하게 변해간다는 소리를 TV 등을 통해서 들었지만,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원래 있던 그대로를 지켜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래서 너무 한결같이 "힙"한 장소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면 바람이랄까.




"힙"하게 변하는 것은 간단하다. 술집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몰리면 된다. 하지만 급하게 "힙"한 곳으로 변한 곳들은 그만큼 빠르게 쇠퇴하는 것도 같다. "무슨무슨리단길" 같은 곳들도 금방 그 인기가 시들해진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주민들이 그곳에 계속 거주하거나 삶을 이어나갔다면 그곳들이 한 번에 우후죽순처럼 불어나 구름을 일으켰다가 한 번에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원래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일 것이고. 이래저래 손해 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 손해를 최소화하고 남겨두는 것도 도시를 위해서나, 사람들을 위해서나 나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일 따름이다.



을지로가 딱히 어때야 된다는 것은 사실 나 같은 지방러의 머릿속에 그려진다면 이 세상은 잘만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도시 내에 있는 비싼 땅값과 그곳에서의 생산비와 여타 이런저런 것들이 맞물리고 또 계산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튀어나올 것은 내 둔탁한 머리로 생각해도 자명하다. 하지만, 을지로라는 이름과 가장 걸맞은 모습들은 이렇게 작은 공장들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는 낮시간이라 생각했다.



만약, 멋이 어떤 깨끗하고 세련됨만을 강조하는 단어가 아니라면 나는 이런 모습들을 "을지로"의 "멋"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깨끗한 존재들만이 뽐내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때로는 오랜 것들이 모조리 다 쓸모없고 흉하게 변해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대에 맞춰 그때, 그때 변해가다 보면 또 그 시간에 맞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세상이다. 



세운상가 위에서 바라보는 을지로는 분명 낡은 동네이기는 하지만은 이곳을 무조건적으로 신식으로 변화가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정형화를 이루는 것 밖에 되지 않을까.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옛 것이지만 때로는 주변과 어우러져 살아지는 것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발전이 되면 이 것보다 한결 멋진 건물들과 안정된 환경으로 주변이 거듭날 것이지만 말이다.


혼자서 앉아계신 아버님의 뒷모습을 통해 을지로가 조금 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래 남아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익숙한 것들이 하나같이 사라져 버리면 그에 익숙했던 세대들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낮의 을지로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을지로는 건재하고 싶다고.




밤의 을지로는 "힙"하다고 한다. 나는 "힙"하다는 말의 뜻을 잘 모르겠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힙합"의 "힙"인지 아니면 "세련되고 멋지고 최신"의 뜻을 가진 단어인지. 어느 것이든 "힙"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구태의연하고 구질구질한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밤의 "을지로"는 다르다는 뜻이겠다.


낮에 한 참 열심히 일을 하시던 작은 공장의 사장님들이 문을 닫고 들어가시면 하나둘씩 테이블이 펼쳐진다.

참 신기하기도 해라. 저 테이블들은 다 어디에 모셔져 있던 것일까. 하나, 둘씩 펴지기 시작한 테이블들은 줄을 잇는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한 줄의 테이블이 들어서기도 하고, 넓은 길에는 꽤 여러 줄의 테이블이 들어선다.


잠시 할 말을 잊는 지방러. 도대체 이 많은 분들은 다 어디서 오신 분들일까. 지방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밤의 을지로는 낮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오히려 낮의 공장들이 정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밤의 을지로는 더 동적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힙"하다는 단어가 붙을 수밖에, 이곳은 공장들이 모여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이곳은 적어도 재개발이니 철거니 이런 단어들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을지로에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 바뀌는 곳이다.


이 시끌벅적함이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조용히 있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힙"한 것에서 오는 에너지는 지방러를 또 위축되게 만들었다. 한 편으로는 멋지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술 한잔씩을 드신 뒤에 집으로 향하시는 노신사분들을 본다. 한눈에 딱 봐도 꽤 오랜 친구 사이이다. 을지로의 밤은 젊은이들에게만 "힙"한 것이 아니었다. 남녀노소에게 다 넘치는 에너지가 있었다. 지방러는 이제 알겠다. 왜 을지로가 "힙"한 공간이라고 불리는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해서도 크게 이의점이 없다.


지방러는 낮과 밤을 오가며 을지로의 두 얼굴을 본다. 어느 곳이 더 "을지로답다."라고는 말을 하지 못한다. 두 군데 모두 다 "을지로"다. 


"이봐요, 을지로가 대전 같은 작은 도시의 한 공간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라고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할 말은 없다. 한낮의 을지로와 밤의 을지로 모두가 내게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낮에 본 을지로의 공간도 사라지면 아쉬울 것이 분명하고, 또 밤의 을지로도 계속해서 "힙"한 공간을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변화가 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곳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간직되기를 바랄 뿐이다.


2024년 4월 28일


글, 사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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