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작은 세상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이용, 서울 중에서
나에게는 일요일에 중요한 일과가 항상 있었는데, 이 일 때문에 일요일에는 약속도 잡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것은 우습게도 TV를 시청하는 것이었는데, 그 시청 프로그램은 1박 2일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유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매주 일요일 밤 나 대신 여행을 떠나 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험기간이었을 때, (나는 월화수목금금토로 한 주를 살았다.) 일요일 1박 2일이 시작할 무렵이면 한 주 간 먹을 음식 중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해서 앞에 놓고 1박 2일을 보면서 웃으며 보는 것이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낙이었다.
많은 여행지를 사랑했지만 나는 제주를 갈망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제주를 다시 가지 못했고, 늘 그리워하던 서울 방송 편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하여 그 뒤로도 (유튜브를 통해서라든지) 몇 번을 다시 보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종로를 담았던 서울 "종로"편은 내게 어떤 각인처럼 남아서 시간적 여유만 생기면 반드시 가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그것도 역시 살다 보니 뒤로만 밀리는 계획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종로 거리를 걷게 될 계기가 되었고, 1박 2일에 나왔던 5곳의 종로 여행지를 다 가보지는 못했어도 그 가까이는 왔다는 기분은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인사동길에서 돌담이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여름이 아님에도 푸르른 나무들이 꽤 우거진 이 길은 보기만 해도 고풍스러움에 만족이 되었다. 이 길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그 유명한 정독도서관이라는 곳이 나온다고 한다.
정독도서관은 시골에 사는 나이지만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 속에 자리 잡아 있는 것을 본 것만으로도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지방러이지만 그러고 보면 수없이 서울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나 보다.
도서관은 도서관인지 공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평화롭고 아늑했으며 아름다웠다.
나는 이곳에서 마지막을 다해가는 겹벛꽃을 볼 수 있었다.
종로의 골목길은 아직도 좁고 정겨운 곳이 남아있다. 내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길과 닮은 길들이 이어져있는 곳들을 지나친다. 나는 후각에 꽤 민감한 편인데 골목의 한쪽으로 자리 잡아 널어놓은 빨래들 사이에서 은은한 향기가 퍼진다. 아마도 빨래 세제에서 나오는 향이거나 섬유 유연제가 분명할 터이지만 그 향기는 비싼 향수보다 더 여운이 남고 사람을 설레게 한다.
빨래를 널어놓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골목이 사라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이곳이 개발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리운 장소 한 곳을 또 잃어버리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비록 화들짝 놀라시기는 하셨지만, 화분을 가꾸시던 아버님은 내 인사에 밝게 화답을 해주신다. 식물이든지 동물이든지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특유의 정이 있다. 나는 그 특유의 정을 믿고 인사를 건넨다.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다. 한옥 마을을 걷다 보면 유행을 따라 옷을 입은 모델들과도 묘하게 어울리는 매력이 한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랜 것이 유행에서 뒤처지는 것이 아닌, 고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내놔도 절대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옥마을의 처가 너머로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내가 보고 싶어 하던 풍경이다.
다시 큰길로 넘어와 일상과 마주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택시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상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아이 둘의 장난치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가 없다.
"네, 여기가 바로 서울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모습들이 좋다.
청계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용의 서울이 떠오른다. 이곳에 사과나무를 딱 심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곳에서 자라는 사과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사과나무는 과연 꿈을 담고 있을까.
카페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고받는 모습에서 평일임을 깨닫는다. 서울의 중심 종로에 한 번 와 봤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1박 2일로 시작된 궁금증은 늘 한결 같이 남아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곳의 삶은...
그것은 골의 바로 앞까지 갔다가 앞에서 쓰러져서 골을 통과하지 못했던 마라토너의 심정과 비슷했다. 나는 늘 넘어진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살았다. 한 번씩의 땅뜀으로 그 그리움이 다 가시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종로에 아쉬움은 덜해진다.
그 덜 해지 아쉬움은 서울이라는 곳의 그리움에 목말라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적셔줄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많은 곳들을 찾아서 나만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앞으로도 서울로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2024-04-21
글, 사진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