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은 사랑하지만...
1950년대쯤, 외할머니가 시집 와서 살고 있는 마을에 남자들이 다 얼마 살지 못하고 자꾸 요절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 점쟁이가 찾아와 뒷산에 제사를 지내고 마을에 큰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대로 제를 크게 지냈다. 당산나무를 심을 때 큰 삼촌도 거들었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좀 더 오래씩 사셨다고.
외할머니가 직접 겪고 해주신 이야기라 더 흥미롭고 재밌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초자연적인 걸 잘 안 믿는 사람이다. 판타지 소설은 사랑하지만 비현실은 비현실이라, 한 발 떨어진 관찰자로서 영화를 보는 느낌. 귀신, 도깨비, 굿, 사주팔자 같은 것들 모두 들을 땐 소름돋고 스산한데 금방 잊는다. 물론(?) 나도 인터넷으로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을 넣고 결과를 보고, 사주도 몇 번 보러 가봤다. 먹을 복이 네 개나 있다는 말은 기쁘고 좋았는데 그 이외에는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다.
보통 우리는 현재가 불안할 때 미래가 궁금해진다. 미래는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일들이 인생에 갑자기 일어나고, 그건 보통 내 손을 벗어난 일이고 불합리할 때가 있다. 그런 다가올 위협을 통제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미래를 현재에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이 바로 점, 타로, 사주, 손금, 관상 등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 인과관계를 붙이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의미부여 능력의 발현일 뿐이다. 조금 찾아보니 신점은 신의 말을 해석해주는 걸 듣는 거라 전달하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불확실한 걸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결국 그 답변도 불확실하다니! 무엇을 듣든 확인할 방법은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가, 멸망하지 않으니 여러분의 기도 덕분입니다, 라고 말했다는 교주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주를 보러 가는 심리에는 불안뿐만 아니라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얕은 고민 상담을 하러 가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때론 아는 사람보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늘 사주를 봐주는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 내 입으로 말하는 정보를 제한하려고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정말 능력이 있다면 맞출 거라는 시험하는 태도로. 그래서 늘 완전한 고민해소가 되지는 않았다.
연애, 취업, 건강, 재물 등, 모두 답을 알면 좋은 질문들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주를 봐주는 분이 의사도, 재테크 전문가도 아닐 텐데 왜 그들에게 많은 갈래의 것들을 한 번에 묻는 걸까? 그리고 답을 들어도 확실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하고, 언제나 해석의 여지가 있다. 확실한 답이래도, 당장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고...
열두 발자국이라는 정재승 박사님 책을 좋아하는데 여기 사주나 타로, 손금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금이 붙지 않는 블랙 마켓. 생각해보면 늘 사주를 보러 가면 계좌이체를 했던 것 같다. 세금이 없다는 건 결국 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가치 교환이 될 만한지 측정하기 어려운, 정당한 거래라고 따지기 애매한 시장이란 뜻 아닐까? 재미로 보러간다고 해도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형성된, 어찌보면 거대한 사기 시장에 내 몇 만원과 사회의 자금이 계속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이 꺼려졌다.
책에서 가장 와닿고 좋았던 말은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다. 정말 미래를 미리 알면 좋을까? 모르고 받은 선물이 더 기쁘다. 나쁜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다면 그걸 걱정하느라 계속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신내림을 받는 사람들이 실재한다고 하고, 타로마스터가 되어 본인 마음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 내가 편협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미래를 듣기보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원인을 찾아서 노력하면 그것이 상황을 개선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고 싶다. 불안하고 두렵지만 내 노력과 의지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임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