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하나의 위안을 주는 선물을 발견했다. 바로 ‘그림책’이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그림책 지도사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림책은 내가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다. 선생님이 읽어주었던 빨간 표지의 <무릎 딱지>란 그림책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던 그림책이 이제는 나를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림책은 그렇게 어느 순간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림책 관련 수업을 듣고 많은 그림책을 읽으며 내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고 블로그에 남겼다. 기록하면서 나의 지식과 경험 쌓여갔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 전문가이자 강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림책의 힘을 알려주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기쁨이었다.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방법으로 그림책을 추천했다. 상상의 한계가 없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림책으로 나를 찾고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며 성장의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담아 <나를 일으키는 그림책>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책 에세이를 써서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특히 육아로 지치고 힘든 엄마들에게 그림책 한 권이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자주 추천하는 브리타테켄트럽의 <블루와 옐로>는 주인공인 파랑새 블루가 자신감을 잃고 어두운 곳에 머물러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 많은 위안을 받았던 그림책이다. 따듯하고 안정적인 그림 또한 독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블루는 하늘을 날고 있는 대신 어둡고 컴컴한 숲속에서 지내고 있다. 두려움에 휩싸여 흔들리는 눈빛이 안타깝다. 어느 날 달빛만큼이나 아름다운 새, 옐로가 나타났다.
“날이 갈수록 블루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나뭇가지에 앉아 있기만 하던 블루는 옐로의 밝은 빛을 받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블루와 옐로 두 새가 함께 부드러운 노랫소리를 만든다. 나무우듬지(나무의 꼭대기 줄기)까지 오르는 희망의 노래를 말이다. 그림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빛을 주는 옐로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해보았다. 지금 나에게는 바로 ‘그림책’이 옐로였다.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의 <작은 발견>은 실의 쓸모를 소개한 단순한 내용이지만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것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의 실은 사소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중요성이 있다. 우리는 단추가 떨어졌을 때, 옷 솔기가 나갔을 때 난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연결해야 할 때 실이나 끈이 꼭 필요하다.
“중요한 건,
이들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는 거예요.”
<작은 발견>을 읽고 나도 이렇게 쓸모 있는 역할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있는 거구나, 그것부터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역할은 엄마와 아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리가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엄마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고 있다. 몸은 편안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아, 이제 점점 더 나를 찾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를 필요로 할 때, 나에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종알거릴 때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처럼 내가 필요한 그 순간 그곳에 있는 것만큼 중요한 것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그림책이 주는 위로와 가치를 마음에 쌓아갔다.
나는 어느새 나를 돌보고 나의 소중함을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