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6
약 24주 간의 밴쿠버 생활의 막이 닫히는 중이다.
이곳에서의 봄 한 잎은 반짝였고,
여름의 한 컵은 청아했다.
가을인 지금, 한 줌의 바람처럼 마음 어딘가가
공허하고 또 가득하다.
그리울 거라며 기꺼이 밥 한 끼 함께 한 반 친구들도,
특히 맛있어하던 과자를 사주려고
상점 세 곳을 돌아다닌 선생님도,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며 네잎클로버를 건네주신
언니도,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교환한 오랜 벗들도.
한국이 딱히 반갑지는 않지만,
고향에서 사는 게 가장 편한 것처럼
밴쿠버에서의 나날은 평범했음에도,
포옹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덕에 특별했던
24주를 끝으로,
억울한 모함을 받고, 퇴사를 하고,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싶어 도전한
자격증 취득과 디자인 공부, 어학연수라는
커다란 20대 마지막 일탈이 저물어간다.
긴 시간 동안 뭘 배웠느냐는 한국인스러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면,
조금은 단순해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의 계획을 묻는
또래 친구들의 물음을 듣는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살아남기 위해
치열히 살아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된 것 같냐고 자문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방법을 조금은 깨달은 사람이 됐다고
설명할 것이다.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과
언제든 내 곁에 있을 거란 믿음을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이곳에서의 인연이
앞으로 우리를 더 밝게 비출 수 있기를.
밴쿠버에서의 어느 밤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