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에 독서모임에서 발표하기 위해 썼던 독후감입니다. 참고해주세요. -
독자들은 그를「플랜더스의 개」를 쓴 영국 소설가로 더 많이 기억할 것이다.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1874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이주하여 가난하게 살다 죽었다. 그가 쓴「뉘른베르크의 난로」는 가난한 집의 아들인 아홉 살짜리 주인공 ‘아우구스트’와 그가 애지중지하던 난로를 둘러싼 애틋하고 감동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아우구스트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혼자서 열 자녀를 버겁게 키워가고 있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며, 식구들 모두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바로 ‘난로’였다.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갖추고 살 수 없었던 그들에게 그 난로는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나 다름없었다.
1532년에 만들어진 이 난로는 뉘른베르크의 위대한 도예가 ‘아우구스틴 히르슈포겔’의 이름을 따서, 식구들 사이에서는 ‘히르슈포겔’로 통했다. 이 난로는 도자기로 된 탑 모양을 하고 있는 데다, 왕의 공작새와 여왕의 보석이 빛나고 있었고, 그 위에 무장한 군인과 방패, 문장과 꽃, 그리고 그 위 가장 높은 곳에 커다란 황금 왕관이 놓여 있어서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호화로운 도료 칠을 한 파이앙스 도자기 난로로, 높이는 무려 240센티미터나 되었다. 더군다나 그 표면엔 도예가 ‘히르슈포겔’을 상징하는 ‘H.R.H.’라는 서명 또한 새겨져 있었는데, 그가 인스부르크에서 황제의 손님으로 머물던 시절 티롤 지방의 위대한 군주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어쩌다 이 위대한 작품이 아우구스트가 사는 ‘할’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숙련된 석공이었던 아우구스트의 할아버지가 가져온 것으로 식구들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을 짓던 터에서 흠 하나 없이 멀쩡한 그 난로를 파냈는데 그것을 집에 가져가면 훌륭한 난로가 될 거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왕실에서 쓰던 이 물건을 식구들이 보물처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기둥 역할을 했던 ‘도로테아’는 열일곱 살 난 소녀로 집안의 10명의 아이 중 장녀였다. 궁핍한 살림을 어머니 대신 꾸려가야 하는 장녀는 빵 한 조각을 스무 배로 부풀리는 기술을 가진 아가씨이기도 했다. 또, 가장 위의 세 소년은 하루 종일 눈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돌아왔으며, 외할아버지는 나무와 전나무 방울과 석탄 연료를 파는 일을 했다. 아버지는 제염소에서 일하며 푼돈을 벌어 오는 가장으로 열 명의 자녀를 먹여 살려야 하는 고개 숙인 남자였다.
아이들에게 그 난로는 가정의 수호신이었다. 여름엔 난로 주변에 신선한 이끼를 깔아주고 초록 가지와 수없이 많은 티롤 지방의 아름다운 야생화로 꾸며주었다. 겨울에는 아이들의 모든 즐거움의 중심이 바로 그 난로였다. 아이들은 우아한 난로의 열정적인 불꽃 안에서 호두를 깨고 밤을 구울 생각을 하며 얼음과 눈을 넘어 신나고 행복하게 학교에서 돌아오곤 했다. 아이들은 난로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취급하며 ‘히르슈포겔’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느닷없이 흐르슈포겔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고 말한다. 떠돌이 장사꾼에게 200플로린에 팔아버렸으며, 다음날 뮌헨으로 보낸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주인공 ‘아우구스트’는 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버지에게 강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고 빚을 갚기 위해선 그 난로를 팔아야 하는 아버지로서는 달리 선택할 것이 없었다.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했지만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그 아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렇게 강하게 반발했던 아우구스트는 결국 가족 대신 난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장사꾼들이 난로를 포장해 짐마차에 실어갔지만 그는 그 뒤를 쫓았다. 이윽고 그들이 짐마차에서 화물 열차로 난로를 옮기는 것을 목격하고는 열차가 마을을 떠날 때 난로 안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 상태로 로젠하임 역까지 이동했고 이어서 화물 창고에 내려졌다. 난로 안에서 아우구스트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얼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난로 포장을 두껍게 한 터라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다시 열차에 실린 난로와 아우구스트는 뷔름제로 이동했고, 바지선에 올려졌다. 바이에른의 호숫가 작은 마을 레오니로 향했고, 짐꾼들은 난로를 어깨에 메고 3킬로미터를 더 이동했다.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베르크의 왕실이었다.
왕이 난로의 놋쇠 문 손잡이를 돌리자 안에 웅크리고 있던 아우구스트가 밖으로 나와 그분의 발밑에 몸을 던졌다. 울먹이며 제발 히르슈포겔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는 왕실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감동 받은 왕은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화가가 되고 히르슈포겔을 만든 장인처럼 되고 싶다고 대답하자 왕은 말한다.
“일어나거라, 아이야. 무릎은 신 앞에서만 꿇거라. 히르슈포겔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알겠다. 그러도록 하마. 내 궁전에 머물면서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거라. 유화를 그리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든 네가 원하는 걸로 하거라. 대신 훌륭하게 자라서 매년 예술학교의 월계관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훌륭하게 잘해낸 상으로, 네가 스물한 살이 될 때 뉘른베르크 난로를 하사하마. 혹여 내가 죽고 없어도 내 후계자에게 그리하도록 하마. 이제 두려워 말고 이 신하와 함께 가거라. 너는 매일 아침 히르슈포겔에 불을 피워도 좋다. 하지만 나무를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이 작품엔 열 자녀를 버겁게 키워가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충성스럽게 보필하는 장녀 도로테아, 난로에 남다른 애정과 집착을 가진 주인공 아우구스트, 어린아이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주는 왕이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이 난로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집착은 무섭게 다가오기까지 하지만 그 진정성을 평가해주는 왕의 관대함과 지혜로움 또한 대단히 감동적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도 여기에서 엿볼 수 있고, 현실의 벽에 좌절하고 마는 가장의 아픔 또한 와 닿는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며 어떤 지혜를 얻어야 할까? 깨달음은 순전히 독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