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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Sep 26. 2024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을 읽고


    ‘전생’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소설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소설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픽션이고, 어디까지나 상상력이 요구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소재를 선택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기억」에서는, 전설로만 남아 있는 ‘아틀란티스’가 책의 핵심 배경으로 등장한다. 플라톤의 저서「크리아티스」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고 하는 ‘아틀란티스’. 이것은 과거에 육지로 존재했으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초고대문명이었다고 한다. 포세이돈이 화산을 폭발시키고 홍수를 일으켜 바다에 수장시켰다고 하는 신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처럼 실체는 없으나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는 소설에 사용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마치 ‘공룡’을 소재로 수많은 소설과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이야기는 전생을 체험하게 하는 최면사 ‘오팔’의 공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르네’는 직장 동료인 엘로디와 함께 유람선 공연장인 <판도라의 상자>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최면사 ‘오팔’은 ‘르네’를 콕 집어 전생 체험 대상자로 정한다. 얼떨결에 지목된 르네 앞에 펼쳐진 전생은 무려 111개나 되었다.    

 

  첫 번째 체험한 전생은 109번째였는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인 병사 이폴리트(상병)의 인생이었다. 그는 독일군과 육탄전으로 싸우다가 오른쪽 눈에 칼이 박혀 두개골을 통과하는 것까지 체험하고 최면에서 돌아온다.


  현실로 돌아온 르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스킨헤드 청년이 르네의 돈을 뺏으려 달려들고 마침내 육탄전까지 하게 된다. 정당방어를 하던 르네는 청년을 죽이게 되고 그 시체를 강둑으로 끌고 가 강으로 밀어버린다.


  고등학교의 역사 교사인 르네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일상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미스테리 같은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은, 시험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을 가르치는 수업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한다. 그럼에도 르네는 이같은 행태를 계속 이어간다.     


  르네는 최면사 ‘오팔’을 찾아가 최면을 요구해서 다른 전생을 체험한다. 1785년의 레옹틴 드 빌랑브뢰즈 백작부인을 만난다. 그녀의 인생이 르네의 95번째 전생이다. 부인은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로 에워싸여 있다.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자식들은 금괴를 어디에 묻어놨는지 부인에게 묻는다. 떡갈나무 아래에 금괴를 숨겨둔 부인은 가족들에게 그 위치를 말해주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는다.     


  세 번째로 체험한 전생은 갤리선 노잡이 제노의 인생이다. 올리브나무 과수원에서 형, 누나, 동생들과 장난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다. 제노가 타고 있는 로마군의 배가 카르타고의 군선들과 전투를 벌인다. 갑판에서 전쟁하던 로마군인들은 도망가거나 바다에 빠지고, 노잡이 제노가 선수로 가서 키를 잡고 배를 움직인다. 로마군의 편에 서서 배를 구하고 다시 노잡이가 될지, 아니면 카르타고에 투항해 바알신의 제물이 될지 결정할 순간이 온다. 이때 전생을 체험하러 간 ‘르네’가 ‘제노’에게 말을 건다. 로마인들이 카르타고 사람들을 식인 야만인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며 카르타고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다음, 네 번째로 체험한 전생은 아틀란티스에 사는 ‘게브’의 인생이다. 이것은 1만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맞이하는 자신의 첫 번째 인생이다. 아틀란티스에서 게브가 사는 도시는 멤세트이고, 이곳은 하멤프타섬의 수도다. 이 섬은 대서양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데, 게브는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아틀란티스인들은 유체 이탈을 통해서 가보고 싶은 행성이나 별에 갔다 올 수가 있고, 높은 정신세계 갖고 있으며, 두려움이나 걱정 근심없이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르네는 아틀란티스에 매료되고 만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르네는 학생들에게 아틀란티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며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역사를 가르치며 토론을 시도한다. 급기야 피넬 교장에게 불려가 심하게 꾸중을 듣는다.


  르네는 다시 전생으로 찾아가 게브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틀란티스인들은 개인별로 텃밭과 과수원을 통해 음식물을 자급자족하는데, 그들은 현대인들처럼 동물을 키워 잡아먹지도 않는다. 르네가 현대의 동물 사육방법을 얘기해주니까, 어떻게 죽일 목적으로 기른 동물의 사체를 먹을 수 있냐면서 게브는 혐오스러워한다.     


  르네는 역사 수업 시간에 대홍수 이야기를 꺼낸다. 기원전 1600년 경 히브리인들이 쓴 구약 <성서> 창세기 7장에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를 하며, 힌두교 경전과, 중국 사상서 <화남>, 마야 경전 <포폴 부>에도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연관지어 설명한다. 아틀란티스도 대홍수에 의해 바다로 가라앉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르네는 생각한다. ‘거짓을 듣는 데 익숙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진실을 의심하게 마련이지. 하지만 끈질기게 설득하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저 아이들이 생각에 게으른 사람이 되지 않게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만의 의견을 갖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직장 동료인 엘로디와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경찰이 들이닥쳐 르네를 체포해간다. 앞서 르네가 스킨헤드 청년을 죽이고 강물에 밀어넣었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자백하라고 강하게 압박하는 경찰 앞에서 덤덤하게 자신은 정당방위를 했으며 무죄라고 주장하자, 르네의 태도를 보고 경찰이 오히려 놀란다. 그런 와중에도 르네의 머릿속에는 80만 명의 아틀란티스인들을 홍수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전생인 게브에게 찾아가 대홍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힘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유치장에 갇힌 르네는 화장실에 가서 본인에게 최면을 걸어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난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틀란티스인들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아틀란티스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르네는 말한다.

  “당신과 대화를 하다 보면 돈과 보상과 처벌이 전부인,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삶의 동력으로 삼는 우리 시대의 낡고 즉자적인 사고방식에 내가 길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잔 르네에게 다음날 엘로디가 찾아와 면회를 신청한다. 엘로디는 르네가 이제껏 이야기했던 아틀란티스에 관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를 마르셀 푸르스트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면, 유치장에서 나오게 할 수 있고 정신적인 질환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설명을 듣고 르네는 순순히 따라 나선다.     


  정신병원에서 그의 치료를 맡은 ‘막시밀리앵 쇼브’라는 의사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르네를 치료하려 한다. 치료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전기 충격 기법으로 기억을 삭제하고 새로운 기억을 심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르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려는 순간, 르네는 자가 최면술로 게브를 찾아갔다가, 다시금 111번째 전생인 캄보디아 승려에게로 찾아간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고통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전투력 강한 전생으로 찾아가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109번째 전생인 이폴리트 상병에게 다시 찾아간다. 결국 이폴리트의 전투력을 힘입어 병원 구급차를 훔쳐 타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르네는 아틀란티스에 일어날 대홍수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 최면을 통해 아틀란티스에 가서 위험을 알리고 대피시키는 동시에, 1만 2천년 전에 있었을 아틀란티스가 위치한 곳까지 최대한 접근하고자 오팔과 함께 <날치>라는 이름의 요트를 구입한다. 최면을 통해 게브에게 찾아간 르네는 우여곡절 끝에 80만 명의 아틀란티스인 중에서 174명을 구해낸다. 그들은 동쪽으로 항해해서 훗날 이집트라 불리는 육지에 다다른다. 항해 도중 여덟 명을 잃고 22명이 실종되는 바람에 144명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르네와 오팔이 탄 날치호도 이집트 해안에 다다른다.     


  게브를 포함한 144명의 아틀란티스인들이 당도한 육지에는 소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육지인들이 소인이 아니라 아틀란티스인들이 거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17미터의 키를 가지고 있어서, 육지인들과는 무려 10배나 신장 차이가 났다. 르네가 게브와 만났을 때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만남이 육체적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게브는 아틀란티스에서 문명을 이룩했던 자신들의 역사가 영원히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이것을 이집트 남쪽 사막의 오아시스에 있는 동굴에 가져가 후세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침내 현생에서 르네와 오팔은 그 지점이 어디인지를 찾아내고, 그 역사적인 발견을 대외적으로 공식 인정 받고자 한다. 르네는 예전의 직장 동료 엘로디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마침내 엘로디가 르네의 말을 믿고 이 일에 합류한다. 이어서 PD, 카메라우먼, 음향전문가가 뒤이어 따른다. 역사적인 대발견으로 언론을 뒤흔들려했던 시도가 실패하는 일이 벌어진다. 보도하기로 했던 증거물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들이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유물들을 고의로 파괴했다면서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감옥에 갇힌다.     


  르네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109번째 전생인 이폴리트를 찾아간다. 결국 이폴리트의 전투력을 힘입어 르네는 동료들과 함께 탈옥에 성공한다. 르네, 오팔, 엘로디, PD, 카메라우먼, 음향전문가는 날치호 요트를 타고 이집트를 떠난다.     


  르네는 다시 한 번 퇴행 최면을 통해 전생의 문으로 들어가 111개의 전생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게 한다. 첫 번째 아틀란티스인 게브로부터 시작해서 111번째 캄보디아 승려까지 모두가 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름과 직업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서 게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행복 속에 너무 머무르기만 하다 보니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어요. 불안감도 두려움도 소명도 없이 살다 보니 의식 마저 잠들어버렸죠. 우리가 이룬 정신의 위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어요. 르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 존재의 기록을 글로 남기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죠. 아틀란티스 문명의 기억을 활자로 남겨 줄 역사가도 한 명 없는데, 우리가 지혜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위에서 소개한 게브의 말 속에 그 답이 들어있지 않을까? 소설이 제공하는 ‘상상’ 속에 온 몸을 담그고 심오한 의미에 젖어드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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