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마다 7번의 목요일에 동아리활동을 한다. 우리 반에 오는 아이들은 일러스트부서를 선택한 아이들인데 뭐가 그렇게 그리고 싶은 것이 많은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태블릿과 펜슬을 챙겨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수업 종이 치기 전 쉬는 시간부터 잔뜩 집중해서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뭘 설명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처음에는 내가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영상을 찾아서라도 뭐라도 알려주고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해야지 싶었는데, 워낙 자유드로잉을 시켜달라고 졸라대서 격주 간격으로 한 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리고, 다른 한 주는 자유드로잉을 하고 있다.
도서관 수업용 태블릿을 빌려서 사용하는 중이라 수업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4명씩 반납을 시키는데, 지난 시간에는 몇몇 아이가 본인들이 다 반납할테니 남아서 더 그리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사서선생님께서 허락해주셔서 그러라고 했더니 오늘은 4명 정도의 아이가 남아서 그림을 더 그리다 갔다. 그 중 두 명은 30분이나 더 남았는데 연신 그림을 그려서 업로드 해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8개 반에서 아이들이 섞였는데 자기소개할 시간도 갖지 않아서 서로 잘 모를텐데도 그림 그리는 내내 어찌나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지.. 서로 이름도 잘 몰라서 “얘들아~”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가 내 스타일이네, 너네 ~~는 꼭 봐야 해, 하는 대화를 듣고 앉아 있다보면 나 혼자 어색하게 만화동아리 동아리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느낌이다. 애니를 많이 봐서인지 일본어도 빈번하게 들리는데, 애들이 전반적으로 입담이 좋달까 듣고만 있어도 참 재미있다.
첫 시간에는 교육청 구글 계정을 알려주고, 와이파이 연결해주고(도서관이랑 와이파이가 다름) 그리기 어플에 로그인 시켜주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려서 의도치 않게 자유드로잉을 했는데, 아이들이 업로드해 놓은 그림들을 보다보니 우리 반 아이가 나를 스케치한 그림이 있었다. 어쩐지 애정이 느껴져서 가져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각종 프사로 사용중인데, 간결하지만 그림에서 문득문득 아이의 시선이 느껴져서 볼 때마다 따뜻해진다.
오늘은 일러스트 동아리 수업에 온 다른 반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은 남자친구가 있냐고 대뜸 물어보았다. 그래서 너는 3달 넘게 담임한 우리 반 아이들도 안 물어보는 그런 사적인 걸 물어보냐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반 일러스트 부 아이들이. “맞아맞아, 무례하다!!, 예의를 갖춰라!”하고 외쳤다. 이런 소소한 귀여움이 요즘 나의 낙인 것 같다. 함께하는 아이들이 꾸러기들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문득문득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어서 참 따뜻하다. (202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