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각지도 못하게 6학년 영어교과를 맡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교과는 아직 줌수업을 하지 않아서 녹화한 영상 업로드와 등교시 대면수업만 병행하고 있는데, 녹화한 영상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영상을 올릴 때마다 추가로 interactive worksheet형태의 과제 링크를 제시하고, 과제를 성실하게 해결한 아이들에게는 작은 상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안되는 교과운영비로 가성비 좋아보이는 펜을 사고, 대면 수업 때 만나서 과제 10개 하면 펜을 1개 골라 가져갈 수 있다고 장사를 시작했다. 영어 교과 예산 20만원, 여러분 200명,1인당 예산 1000원, 한정수량 조기품절 예정 막 이러면서 펜을 팔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어른도 하기 힘든건데 영상수업으로 시작한 영어 수업에서 6개나 되는 과제를 완벽하게(제출여부만 체크했지만.) 제출한 훌륭한 학생들이 있다고, 이 어린이들은 뭐든 잘 할거다 하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원래 과제 10개 해야 펜을 한 개 고를 수 있는데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훌륭한 태도를 가진 이 어린이들은 오늘 수업 끝나자마자 당장 펜을 하나 골라가라고 했다.
다행히 상품이 어린이들 취향에 맞았는지 수업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어린이가 그런데 과제는 어떻게 하는 거냐 질문하고, 한 두개 안 해서 당장 펜을 못 받은 아이는 과제를 몇 개 빠뜨린 과거의 자신을 반성했다. 일부러 장사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펜을 종류별로 4~10자루씩 지퍼백에 넣어서 들고 다니다가, 수업 끝나고 과제 다 한 어린이들 앞으로 나오라 한 후에 커다란 지퍼백 3개를 촥촥 꺼내서 펜을 고르게 했다. (물론 코로나 때매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내가 손소독제하고 꺼내주었다.)
수업 끝나면 교과실에 돌아오자마자 팔린 펜들 재고 채워넣고, 남은 예산으로는 어떤 펜을 더 사볼까 신상 펜을 물색하는 내 모습이 진짜 펜장사 같다. 글리터펜이랑 파스텔 젤펜도 입고시키고 싶은데 단가가 비싸서 슬픈 문방구 사장이랄까. 영어교과는 진짜 말을 많이해야 해서 3시간 째 되면 마스크가 너무 뜨겁고 머리도 핑 돌지만 그래도 귀염둥이들에게 펜 열씌미 팔면서 1년 잘 지내봐야겠다. (202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