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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항 Aug 16. 2024

펜장사

올해 생각지도 못하게 6학년 영어교과를 맡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교과는 아직 줌수업을 하지 않아서 녹화한 영상 업로드와 등교시 대면수업만 병행하고 있는데, 녹화한 영상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영상을 올릴 때마다 추가로 interactive worksheet형태의 과제 링크를 제시하고, 과제를 성실하게 해결한 아이들에게는 작은 상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안되는 교과운영비로 가성비 좋아보이는 펜을 사고, 대면 수업 때 만나서 과제 10개 하면 펜을 1개 골라 가져갈 수 있다고 장사를 시작했다. 영어 교과 예산 20만원, 여러분 200명,1인당 예산 1000원, 한정수량 조기품절 예정 막 이러면서 펜을 팔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어른도 하기 힘든건데 영상수업으로 시작한 영어 수업에서 6개나 되는 과제를 완벽하게(제출여부만 체크했지만.) 제출한 훌륭한 학생들이 있다고, 이 어린이들은 뭐든 잘 할거다 하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원래 과제 10개 해야 펜을 한 개 고를 수 있는데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훌륭한 태도를 가진 이 어린이들은 오늘 수업 끝나자마자 당장 펜을 하나 골라가라고 했다.


다행히 상품이 어린이들 취향에 맞았는지 수업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어린이가 그런데 과제는 어떻게 하는 거냐 질문하고, 한 두개 안 해서 당장 펜을 못 받은 아이는 과제를 몇 개 빠뜨린 과거의 자신을 반성했다. 일부러 장사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펜을 종류별로 4~10자루씩 지퍼백에 넣어서 들고 다니다가, 수업 끝나고 과제 다 한 어린이들 앞으로 나오라 한 후에 커다란 지퍼백 3개를 촥촥 꺼내서 펜을 고르게 했다. (물론 코로나 때매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내가 손소독제하고 꺼내주었다.)


수업 끝나면 교과실에 돌아오자마자 팔린 펜들 재고 채워넣고, 남은 예산으로는 어떤 펜을 더 사볼까 신상 펜을 물색하는 내 모습이 진짜 펜장사 같다. 글리터펜이랑 파스텔 젤펜도 입고시키고 싶은데 단가가 비싸서 슬픈 문방구 사장이랄까. 영어교과는 진짜 말을 많이해야 해서 3시간 째 되면 마스크가 너무 뜨겁고 머리도 핑 돌지만 그래도 귀염둥이들에게 펜 열씌미 팔면서 1년 잘 지내봐야겠다. (20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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