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공항 Aug 16. 2024

일러스트 동아리

학기마다 7번의 목요일에 동아리활동을 한다. 우리 반에 오는 아이들은 일러스트부서를 선택한 아이들인데 뭐가 그렇게 그리고 싶은 것이 많은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태블릿과 펜슬을 챙겨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수업 종이 치기 전 쉬는 시간부터 잔뜩 집중해서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뭘 설명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처음에는 내가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영상을 찾아서라도 뭐라도 알려주고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해야지 싶었는데, 워낙 자유드로잉을 시켜달라고 졸라대서 격주 간격으로 한 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리고, 다른 한 주는 자유드로잉을 하고 있다.


도서관 수업용 태블릿을 빌려서 사용하는 중이라 수업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4명씩 반납을 시키는데, 지난 시간에는 몇몇 아이가 본인들이 다 반납할테니 남아서 더 그리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사서선생님께서 허락해주셔서 그러라고 했더니 오늘은 4명 정도의 아이가 남아서 그림을 더 그리다 갔다. 그 중 두 명은 30분이나 더 남았는데 연신 그림을 그려서 업로드 해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8개 반에서 아이들이 섞였는데 자기소개할 시간도 갖지 않아서 서로 잘 모를텐데도 그림 그리는 내내 어찌나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지.. 서로 이름도 잘 몰라서 “얘들아~”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가 내 스타일이네, 너네 ~~는 꼭 봐야 해, 하는 대화를 듣고 앉아 있다보면 나 혼자 어색하게 만화동아리 동아리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느낌이다. 애니를 많이 봐서인지 일본어도 빈번하게 들리는데, 애들이 전반적으로 입담이 좋달까 듣고만 있어도 참 재미있다.


첫 시간에는 교육청 구글 계정을 알려주고, 와이파이 연결해주고(도서관이랑 와이파이가 다름) 그리기 어플에 로그인 시켜주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려서 의도치 않게 자유드로잉을 했는데, 아이들이 업로드해 놓은 그림들을 보다보니 우리 반 아이가 나를 스케치한 그림이 있었다. 어쩐지 애정이 느껴져서 가져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각종 프사로 사용중인데, 간결하지만 그림에서 문득문득 아이의 시선이 느껴져서 볼 때마다 따뜻해진다.


오늘은 일러스트 동아리 수업에 온 다른 반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은 남자친구가 있냐고 대뜸 물어보았다. 그래서 너는 3달 넘게 담임한 우리 반 아이들도 안 물어보는 그런 사적인 걸 물어보냐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반 일러스트 부 아이들이. “맞아맞아, 무례하다!!, 예의를 갖춰라!”하고 외쳤다. 이런 소소한 귀여움이 요즘 나의 낙인 것 같다. 함께하는 아이들이 꾸러기들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문득문득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어서 참 따뜻하다. (2023.6.8.)



작가의 이전글 펜장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