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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항 Aug 13. 2024

여든네 살의 안타


1교시에 티볼을 했다. 어제 배팅 연습을 한 시간 하고 오늘 처음으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어설프게 배트를 잡은 아이에게 파란색 ‘실버크린벨’ 조끼를 입으신 어르신이 다가오셨다. 오전에 운동장과 학교 주변을 청소해 주시는 분들이 신데, 야구 수업은 주무관님, 보안관님 가릴 것 없이 지나가다가 잠시 멈춰 구경하시는 일이 많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은 아이에게 배트 잡는 법과 휘두르는 법을 코칭해 주셨다. “야구 많이 해보셨나 봐요.” 여쭈었더니 고등학교 때 투수셨다고 하셨다. 전문가(!)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든 나는 “괜찮으시면 애들이 배우게 공 한 번 쳐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잠깐 망설이다가 배트를 휘두르셨는데, 공은 힘없이 툭 떨어지고 말았다. “내 나이가 여든 넷이에요!” 하시면서 민망해하셨는데, 아무래도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아서 연세가 그렇게 많으신 줄 몰랐다고, 무리하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어르신은 진지한 눈으로 한 번 더 쳐보겠다고 하시더니 멋지게 안타를 날려주셨다. 환호하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여든네 살이시래!!!!” 말하며 함께 소리치고 그 사이 어르신은 쿨하게 퇴장하시고. 그냥 그 짧은 순간이 예쁜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서 좋다.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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