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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Oct 04. 2024

봄날은 간다(1)-아버지

내 삶의 안쪽_30.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유난히 아파트 단지 안이며 도로가에 벚꽃나무가 많은 동네여서 벚꽃 개화 철이면 천지가 온통 벚꽃이다. 그런 어느 날 난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꽤 오래전 일이다. 


 지금보다야 젊었던 시절, 그때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한답시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롭게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일이 있었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고, 무언가 틀어진 것에 낙심을 하면서 다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는 나라의 경제가 매우 어려웠던 IMF시절이었는데, 명퇴 대상자도 아니었으면서도 굳이 그 대열에 끼어 회사를 그만두고 새 일을 시도했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실패 아닌 실패를 겪으며 의기소침해 하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에 내색을 안 하려 애를 쓴다 해도 부모님들 눈에는 바로 드러나는 법이었나 보다. 나의 또 다른 시도를 위한 행동에 공백은 길어지고 그것은 부모님들에게는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어느 일이든 잘 안 될 때는 원하지 않던 일들이 겹쳐 일어나기 마련인 것인가. 나의 노력이 제대로 안 풀려가는 것도 걱정이지만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는 것도 또한 큰 걱정거리여서 이도 저도 어려운 상황은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때 맞춰 부모님께 안부인사차 방문 하는 일 조차 부담이 되어 심적으로 괴롭기까지 하였다.


 그날, 아버지는 내게 산책을 가자고 하셨다. 지금껏 그래본 적이 없어서 새삼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조금은 떨리기까지 하였다. 장성한 아들과 연로해져가는 아버지가 함께 한가로이 산책을 해본 적이 없었기도 했지만 순간 가슴이 뛸 만한 비쥬얼(visual)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난 사실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평소의 모습이 아닌 제안이었고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없는 장면이었으니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던 터이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한동안 걸어가야 나타나는 공원으로 향했고, 작은 야산 위에 조성된 자연공원의 등성이쯤에 있는 정자에서 멈추었다. 그곳에서 봄이 한창인 때, 만개한 벚꽃이 동네를 온통 휘덮고 있는 그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나는 말이 없는 채였다. 물론 아들로서 마땅히 내가 말을 먼저 꺼내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자연스런 모양새였겠지만 나는 평소에도 그런 아들이 아니었거니와 뭔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긴장한 상태였으니 더욱 말없는 상태를 유지했었던 것 같다.


 이윽고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다.     

“너무 서둘지 말거라. 그리고 실망하지도 말아라.”     

아버지도 오래 별러서 큰 아들에게 그동안 담아두었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힘들게 드러내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순간 나는 그 다음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말씀의 뜻이 느껴져서 순간적인 감정의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 적은 없었으나 분명 무언가 뜻대로 되고 있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속을 끓이고 있다는 눈치를 채신 부모님은 나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계셨을 것이다. 당신들이 낳은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세세히는 알 수 없다 해도 어느 정도라도 모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능력이고 부모라면 쉽게 느끼고 알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그렇게 말없이 속을 끓이고 있는 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나 역시도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불효가 따로 없었다. 평생 부모님 덕으로 살아왔음에도 한참이나 성장한 그때까지도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드리지는 못할망정 이리 부모님 속을 불편하게 해드린다는 것에 더욱 슬펐다.  

   

“일이 잘 안될 때는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어쩌겠니,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해볼 수도 없으니...“     


 조금 틈을 주더니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그리곤 아버지는 두툼한 봉투를 하나 내미셨다. 나는 그 봉투를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분명 그 봉투 안에는 돈이 들어 있을 것이다. 언뜻 보아 적지 않은 액수일 것이란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였다. 아버지는 눈빛으로 얼른 받으라는 표시를 하면서 그와 같이 말씀하고 계셨다. 

 난 속으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한 눈가 주변으로 힘이 들어가면서 코가 찡해지고 눈 주위가 무겁고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금니를 누르고 애써 참으면서 아버지로부터 시선을 외면하며 하늘 쪽으로, 꽃이 활짝 피어 환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는 벚꽃나무 가지를 맥없이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도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나와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당신의 오래전 일을 나직이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이 날까 말까한 일이지만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어라도 해야만 했기에 경험도 없이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를 처음 시작하셨을 때, 손님에게 물건을 사도록 소리를 쳐야하는데 그 소리가 안 나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머뭇거리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만 한동안 하셨다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 과거의 일을 들려주셨다. 유쾌하지 못한 과거의 일을 꺼내면서까지, 어쩌면 당신의 마음 아픈 오래전의 경험담을 굳이 내게 말씀 해 주시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자식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기위해 이렇게 애를 쓰시고 계신 것이다. 내게는 부담을 덜 주려 노력하시면서도 꼭 필요한 것을 느끼도록 하여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거나 힘겨워 하지 말며, 앞으로 보다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니 현재의 부족하고 어려운 것을 잘 이겨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새겨들을 수 있었다. 짧고 간결한 그러나 자식인 상대방의 마음과 자존심에 손상이 안가도록 조심하고 절제하면서 내게 부드럽지만 강한 위로를 전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잘 느꼈다. 통곡하고 싶을 만큼 감사했다. 마음 한편으로 저며 오는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 만큼이나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한켠의 무거움이 씻겨 지는 듯 한 기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이렇게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겪은 비밀스런 에피소드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가볍고 쉽게 드러내거나 표현할 수가 없었고, 나만이 간직하고 싶었다. 아버지께서도 이 일을 어머니에게 조차 말씀하지 않으셨다. 큰 아들의 위신과 자존심을 살려주려는 아버지의 깊은 배려를 난 너무나 잘 알 수 있었으니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서 그때에는 그렇게 반응하지 못했지만, 홀로 펑펑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그때로부터 20년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으며, 나로 하여금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께서 자식들 곁을 떠나가신지 한 해가 다 되어가고 있다. 그 때 그 봄날처럼 다시 만개하여 온통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지금, 잊을 수 없는 그 봄날의 기억이 더욱 생생히 살아나고 느껴지니 나는 더욱 절절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동안 벚꽃이 만개하여 화려한 봄날이었던 그때 그 봄날은 벌써 수없이 왔다가 지나갔고, 아버지가 안 계신 중에도 이리 또 와 있다. 그리곤 곧 또 가버리겠지.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봄날이 가고 있다.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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