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나쁨에 대한 착각

판단의 역설로부터 배우다- 코헤이 나와

by 바다별다락방



무언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좋은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를 만났고, 그것이 좋은 만남이라 생각했으나 뒤늦게 그것은 자신에게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또 어떤 사건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뒤돌아보면 그것이 나를 성장시킨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세상에 좋고 나쁨이라는 게 존재할까.


예술작품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기괴하고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에서부터 울렁거림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들까지.



현대미술가 코헤이 나와의 Beads연작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크리스털의 아름다움과 동물적 형상에 대해 묘하게 환상적이고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잠시 후 작품의 설명을 듣고 나면 우리는 꽤나 놀라게 된다. 실제 박제된 동물의 형상에 수천 개의 크리스털을 덮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 이 작품은 곧바로 아름다움의 대상에서 생명의 존엄성 문제나 기타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는 대상으로 바뀌어버린다.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우리는 '이것이 좋은 작품이다'라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다른 이들의 의견이었거나 숫자(돈)로써의 가치, 혹은 나의 기호에 의한 것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실 예술작품은 거기에 '있을'뿐이다. 관객이 뭘 느끼든지 간에 그것은 상대방의 몫이다. 작가는 어떤 것을 존재하게 만들면 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백명의 관객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호불호를 견줄만한 대상들이 존재할 뿐이다. 좋은 것은 좋다고 '느끼는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딘가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의 단면을 볼 때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흔히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다른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은 학습된 것이거나 개인의 느낌일 뿐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우리 선조들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좋고 나쁨에 대한 일시적 판단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안개가 걷히듯 말끔히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또한 알게 된다. 그러므로 실상, 좋고 나쁨이란 없다. 그저 어떤 현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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