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예술

딜레마에서 배우다- 앤디워홀

by 바다별다락방



이 사업은 우리 예술인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의미가 있는 사업 이어야 하고
지역민들이 성장하는 기획을 했으면 해요.
더불어 금전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죠.



차라리 도깨비를 불러다 도깨비방망이를 빌려달라고 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예술인들은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나의 예술적인 부분을 드러내야 하고, 그것이 의미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하며 더불어 본인의 생계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을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것이기에 특별히 지원을 해줘야 하는 영역인가에 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예술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어왔고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도 결코 적지 않다. 자꾸만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슬픈 상황들 속에서 우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예술의 힘이다. 우리는 실은,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어떤 것들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니까.


그렇다면 이런 가치 있는 예술이 돈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정말 없을까?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예술가들과 기획자, 혹은 이쪽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생각에 의문을 가졌다. 예술가니까 당연히 돈이 없는 거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당연한 일일까?


사람들이 인식하는 예술가와 그 접점에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가난이었고 늘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예술가들과 그렇지 않은 예술가는 아예 출발선부터 다르다. 금수저냐 흙수저냐의 출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에게 매기는 가치부터가 다르다는 얘기다.


어째서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가 부자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을까? 앤디 워홀은 명백한 흙수저였다. 하지만 돈을 대놓고 사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의식 안에 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벌었을 거라는 막연한 증오가 깔려있다. 하지만 그는 대놓고 돈을 그리기도 했으며, 돈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실은 팩토리가 되었고 그러한 양상을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인정했다. 그는 그렇게 한 시대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비즈니스가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



그런가 하면 제프 쿤스는 어떨까. 2019년 제프 쿤스의 '토끼' 조각품은 1082억에 낙찰된다. 생존하는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말하든 자기를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다. 물론 세상이 보기에는 정신 이상자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서슴지 않았지만 그는 누가 뭐라 해도 투철한 세일즈맨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표를 파는 일부터 주식 중개인으로 일을 하며 돈의 세계를 알아갔으며 자신만의 작업을 해나갔다. 그것도 본인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생산은 자회사의 조수들이 하는 방식으로...



나는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를 보며 그들이 했던 방식에 대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배울 것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예술가니까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고루한 생각들을 버리고 그들만의 격정적인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돈은 에너지이다. 품고 있는 의도가 있고, 궁극적인 시스템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수한 에너지. '나는 예술가'라며 뒷짐 지고 '그건 남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보다는 위 아티스트들의 의식수준과 적극성을 닮아볼 필요가 있다. 돈이됐건 삶이됐건, 자신의 의도와 함께 춤출 수 있는 사람이 더 만족하는 인생을 사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미술작품은 제스처다.
제스처란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하는 일을 의미한다.
-제프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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