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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Nov 01. 2020

내 젊은 날의 심야식당

고독한 투다리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본다. 첫 번째 시즌의 열 편을 먼저 봤다. 그전에 영화도 봤다.

'코바야시 카오루'라는 배우가 식당의 주인장이자 주인공이다. 닮지는 않았지만 나는 '소사장'을 떠올렸다. 소를 키우거나 잡는 소사장이 아니고, 배우 소지섭하고 종씨라서 소사장이다. 내가 예전에 그렇게 불렀다. 소사장은 '투다리'를 경영했다.  


드라마의 시즌은 벌써 세 번째까지 나왔고, 영화는 2편까지 나왔다. 영화 두 개는 모두 한국 가는 밤 비행기 안에서 봤다. 하노이에서 서울 가는 비행에 딱 맞게 만들어진 것처럼, 영화를 틀고, 군침이 돌 때쯤 기내식이 나와서 보다 편안한 감상을 도와준다. 두 편 다 좋았다. 일본어를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을 나이 사십 줄에 와서도 하다니, 나도 참 나를 괴롭히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미군 부대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미군들이 보기 위해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전파를 끌어당기는 통에 우리 집 TV에서도 미국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이름이 아마 AFN으로 통합되었다고 알고 있다. 로고송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긴 세월이 지나도 왜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AFKN(솔라솔레? 솔라솔시?), In touch with your world(이건 나레이션)'  못 알아듣는 것이 팔 할이었지만 그래도 보고 또 봤다는 말이다.


지금도 영화로 나오고 있는 Star Trek, 문화충격 Soul Train,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깔리는 시트콤 Cheers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중 Cheers의 주제곡 한 대목이 인상 깊어 외우고 있다. 'You want to go where everybody knows your name~' 하루를 마치고 치어스(후터스 아님) 바에 모이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들은 서로 이름을 아는 사이다. 심야식당도 그러하다.

Not Hooters but Cheers

나의 삼십 대를 가로지르는 꽤 시간 동안 나는 아래 사진의 동네에 살았다. 애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고, 서울로 통근을 하며 직장도 열심히 다녔다. 부산이 고향인 내가 어떻게 저 위성도시의 한 마을에 들어가 살게 되었냐면 상경 최초 근무지가 바로 저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반일 근무가 있던 시절의 끝물이었고, 직장의 야근 문화도 엄청 강하던 시절이었다. 편도 한 시간가량 걸리는 통근에, 혹 회식이라도 있을라 치면 귀가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구글 스트리트: 저 위 하이트 1번지에서 학교 선배에게 불려 나가 종신보험을 가입했다. 그 땐 뭐랄까, 사람 참 좋았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넘는 시간에 빨간색 광역버스나 총알택시를 타고 집 가까이 오면, 심야식당의 대사처럼 집에는 도저히 바로 들어갈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자주 저 투다리를 찾았다.

"하지만 가끔은 집으로 곧장 가고 싶지 않아 다른 곳에 들를 때도 있다." - 심야식당 -

세상에 흠씬 두들겨 맞았거나, 동시상영 극장 바닥의 껌 자국만큼이나 곳곳에 널려있는 차별에 내상을 입었거나, 신변을 심각하게 비관했거나,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집으로 가는 발길을 돌려 저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심야식당이나 Cheers 처럼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싫었다. 그 동네는 명목상 '우리 동네'였지만 동네의 일부분인 내가 동네를 위해 한 일, 동네가 나를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별보기 운동의 여파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영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권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카운터석에 앉았다. 소주 한 병, 꼬치 하나, 마지막에 500cc 생맥주, 거의 이런 패턴인데 저녁을 안 먹었을 때는 우동을 시킬 때도 있었다. 소사장은 항상 요리하는데 바빴기 때문에 간간히 한 마디씩 주고받는 게 전부다. 그 한 마디씩이 쌓여서 그렇게 아는 안면이 된 것이다. 소사장 전에는 모 공기업을 퇴직하신 사장님이 운영을 했다. 그분은 동네 입구 큰 점포로 메뉴를 바꿔 옮겨갔다.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


심야식당에 모인 일본 사람들도 정말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문화가 달라 이질감이 드는 대목도 있지만 세계화의 첫 발걸음은 'No judge'라고 믿고 다. 그 나라 사람들의 그런 일상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영어 표현에 이런 것이 있다. 'Are you judging me?' 몹시 의역하면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 정도가 되겠다. 안 그러는 것이 좋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Judge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서로 평가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얼마 전 신문 '집으로 평가받는 시대'라는 제목인터뷰 기사가 났길래, 내가 참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다. 그렇게 서로 평가하고, 계층을 나누고, 우월감을 느끼고, 힘을 과시하며 함께 잘 살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십여 년 전 나를 생각한다. 내 젊은 날의 심야식당, OO마을 투다리는 아직 소사장이 꼬치를 굽고 있을지, 다음에 한번 가 봐야겠다. 그때는 상처 없이 가볍게 문을 열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산다. 그 목표는 평가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아니어야 하겠다.

영화 타이타닉 : 3등칸 사람들이 기어오르지 못 하도록 갑판으로 가는 철창을 잠궜다. 평가점수가 낮아서 인가?
만화 미래소년 코난 : 인더스트리아 지하 주민들은 지배층보다 낮게 평가되어 저렇게 포청천인지 해리포턴지를 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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