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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Oct 04. 2020

그 버라이어티에 대하여

국은 우리나라다. 중국의 한나라 유방의 나라로 장기판 위에서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초나라 싸운다. 장기를 둘 때 초록색 초나라를 압박하기 위해 장기판 면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나오는 치트키가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다.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에'라고 시작하는 옛날이야기에는 항상 착한 청소년이 한 명쯤 살고 있다. 그들은 상속받을 유산이 없거나, 계모에게 학대받기 일쑤였고, 생물학적 부모도 사이비 종교, 방판, 다단계 같은 곳에 쉽게 빠지는 얇은 귀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예로 심학규 씨가 있다.


집에 사는 사람들을 한가족이라고 부른다. 또 한 회사 사람들은 한마음이되라고 사장님은 강조한다. 아 참. 뜻도 강조한다. '한마음 한뜻'.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다.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고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뿐이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월리엄 월레스와 그의 연인 머론은 초야권(Prima Noctes)이라는 참 속 보이는 봉건주의 제도 때문에 안 그런 척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땅의 갑돌이 갑순이는 왜 그랬을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범한 젊은이들만 참 못살게 군다.


민족은 한이 많기가 한이 없어서 조용필이 부른 한오백년은 그렇게 인기가 많았나 보다. 저렇게 세상이 갑돌이와 갑순이를 괴롭히니 한이 많을 수밖에. 의 쓰임새는 이 없는 것 같다. 누가 막지 않는 , 한반도가 폭싹 내려앉는 한이 있더라도 한글의 이런 위대함은 한없이 지키고 보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생각은 한이라는 단어 한 개 이렇게 많은 뜻이 있으니, 외국어 명사의 남성/여성, 정관사/부정관사를 놓고 씨름하는 우리만큼 글을 배우는 외국인들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뚝배기 하실래예'로 유명해진 한 귀화 한국인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내 고향에서는 유독 한에 일본말의 잔재들을 붙여서 많이 썼다. '회 한 사라 주이소'는 회 한 접시 달라는 말이다. '한 꼬뿌 하실래예'는 한잔 하시겠냐는 말이다. 이건 순우리말인데 '한 대꼬바리 할랍니꺼'는 담배 피우시겠냐는 참 특이한 말이다. 그 외에도 전 국민이 쓰는 '한 숟가락', '한 따까리' 등이 있는 것 같다.


국은 마이마이와 요요, 일본의 워크맨. 라떼는 그런 브랜드를 가진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손바닥만  기계가 있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그 용도를 모른다는 '카세트 테이프'를 거리에  다니면서 항상 듣기 위해 우리는 그 기계를 가져야만 했다. 졸업 및 입학 선물로 각광받았으며, 명목상 영어학습 테이프 청취가 목적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문세와 변진섭을 듣기 위한 목적이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 얇은 자기 테이프가 감겨 있는데 동생이 장난치다 그것이 윌리엄 월레스의 내장처럼 줄줄 쏟아졌다면 그 날이 형에게 맞아 죽는 제삿날이다.)

 번쯤은 상상 또는 흉내 내 봤을 장면, 영화 '라붐'에서 소피 마르소의 귀에 헤드셋을 씌워주는 장면에서도 그 헤드셋의 잭은 '카세트 플레이어'에 꽂혀 있었을 것이다. 90년대 초 캠퍼스에는 기계 이어폰 끼우고 암수가 서한쪽씩을 나눠 듣는 장면들이 흔하게 연출되었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데 같이 들어보겠냐고 이어폰 한쪽을 내미는 용자들도 있었다.


' 귓구녕 하실래예?'는 그 시절 재기발랄하던 한 선배가 만들어낸 이어폰 작업 멘트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이제훈에게 건넨 대사 '들을래?'와 동급이다. 화엔 가인도 나온다. 우리가 부산에서 귓구녕을 말하고 있을 때, 수지는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카세트 플레이어도 아니고, 일본 유학 간 삼촌이 아끼하바라에서 사왔을 것 같은, 그런 CD 플레이어 끝에 달린 이어폰 R(Right, 오른쪽) 부분을 직접 이제훈의 우이(소귀耳가 아닌 오른쪽 귀右耳)에 꽂아 주신 것이다.

수지의 SONY D-777 CD 플레이어 (이제는 "사지 않습니다.")

 최근 드라마에서는 완전 다른 모습이 나온다. 사혜준이 핸드폰과 에어 뭐시기 콩나물대가리 한 쌍을 꺼내 안정하와 한 개씩 나눠끼고 음악을 듣는다. 듣다가 난데없이 그걸로 전화도 받는다.  청춘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가위 연휴가 끝나간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외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기분이 그다지 기쁨에 지는 않아서, 산중 호걸이라 하는 호랑이님의 생일날 되어, 잘난척 하던 한놈처럼 까불 불까불까불 까불까불 글을 썼더니 음 속 한층 풀리는 것 같다. 쓰다 보니 한참을 썼다. 한주가 시작되는 내일은 또 한바탕 바쁜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저녁  술 뜨고 한 잠 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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