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까이 하지 말자.
나는 계획없는 인생을 의미한다.
나는 문법적으로는 보조사에 속한다.
보조사는 조사와 달리 어떠한 함의를 담고 있는데, 나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는 선택'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장 흔한 예로 '잠이나 자자'가 있다.
우리말의 신통방통함은 조사의 사용에 따라 말에 오묘한 늬앙스를 풍기는 기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많이 쓰는 건 좋지 않다. 의미없이 친한 친구끼리 재미있게 말하기 위해서라면 큰 문제가 될 건 없겠다. 하지만, 습관처럼 나를 쓰는 건 바람직 하지 않다.
나는 그 앞에 오는 체언을 모욕한다. '시골가서 농사나 짓자. 정 안 되면 알바나 하지 뭐. 그냥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자. 식당이나 하나 차려서 먹고 살지 뭐.' 농부, 알바생, 장사꾼, 식당주인은 저런 말 때문에 뭔가 못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저 일들을 잘 해낼 가능성도 희박하다.
많은 분들이 반가운 연락을 주시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야, 베트남에서 사업이나 하면 어떨까?' 내 대답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업 해 보셨어요?' 답은 십중팔구 '안 해 봤지. 이제 배워야지.'다. 내 대답은 '지금 뭘 생각하고 계시든 그냥 하지 마세요.'다.
혹 이런 말이라면 대화의 흐름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템으로 내가 3년간 준비를 했는데 이제 퇴직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베트남에서 이 아이템은 어떻겠니?' 이 문장에는 최소한 나는 없지 않은가?
나를 빼고 말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겠다. 농사'를' 짓고, 알바'를' 하고, 장사'를' 하고, 식당'을'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가지고 준비를 철저히 해도 원하는 일을 참 이루기 어렵다. 세상 일이 그러한데 시작을 알리는 첫마디에 나를 써서야 되겠는가?
데이트를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보다는 '너랑 오늘 이 영화 보려고 내가 예매도 하고 내용도 공부해 왔지'가 더 낫지 않겠냐는 말이다. '어디 밥이나 먹으러 가자' 보다는 '여기 갈치조림 잘 하는 데 찾아 놨어. 가자.'가 정답이다. 근데 난 왜 그 때는 없던 이런 센스가 지금에야 생긴걸까? 아, 맞다. 글로만 잘 아는 거다. 여보 미안.
나는 꼭 필요할 때만 쓰자.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에게 '난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애나 키우란 말이야?'라던가, 어이없는 선물을 남편에게 받았을 때 '이런 유치한 건 우리 딸이나 주면 되겠네'라던가. '돈을 못 벌면 집에나 일찍 들어와야지'도 꼭 나가 필요한 경우라 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화난 부인이 남편에게 쓰기 딱 좋은 보조사다. 그리고 오늘 알게 되었는데 감탄사 '뭐'하고 엄청 잘 어울린다.
군대나 가지 뭐. 결혼이나 할까? 휴학이나 하려고. 이런 나를 쓰지 말자!!
남은 일요일 밥이나 먹고 운동이나 하고 반신욕이나 해야겠다. 휴일엔 나를 좀 사랑해야겠다.
나와 보조사 나 모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한번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