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다닐 때, 교지校誌에 독후감을 실은 적이 있다. 책의 제목은 '아리랑 : 그 맛, 멋 그리고...'라고 하여 다소 수다스러운 제목이었는데, 당시 한참 '글'이라는 것에 빠져들던 나로서는 그 이름마저도 감미로웠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신토불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같은 유행어들이 등장하기도 전이었는데, 약간 겉늙은 편이었던 나는, 옛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각설이를 소재로 한 만화와 연극을 접한 것을 계기로 '각설이 타령' 명창名唱으로 가족과 학교 내에서 자리매김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절판된 책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아리랑은 사실 그 옛날부터 전해오던 가사와 가락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나운규가 감독하고 출연한 영화 '아리랑'에 등장하는 창작곡이다. 최근 내가 읽은(청취한)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도 이 영화와 노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일제의 고문으로 미쳐버린 청년이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려는 친일파 밀정을 살해한다는 줄거리로, 당시 나라 잃은 민중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았으며, 조정래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런 이유로 일제가 OST인 '아리랑'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 '아리랑'을 찍은 곳이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아리랑고개'라고 한다. 이런저런 지명유래설들이 있지만 오늘은 '영화촬영지설'을 유력설로 하기로 한다. 나는 그 아리랑고개를 넘어 이사를 간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라고, 서울로 일하러 와서, 고양시와 파주시에 살다가, 이제 서울로 이사를 간다. 내가 돈암동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내가 '아마 이 사람은 이렇게 반응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한치의 예외 없이 이런 반응을 했다. "왜 마용성으로 안 가고?". 나도 자본주의가 뭔지, 수요공급이 뭔지, 가격결정이 뭔지 학교에서 전공과목으로 배운 사람이므로, 뭘 몰라서 마용성에 안 가는 게 아니다. 혹 그 사람이 뭘 잘 몰라서 그렇게 물었다면 내가 이해하겠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축하한다."라고 말한다. 내 경우도 그랬다.
자유로. 나아가 제2자유로. 이름만으로는 매우 자유로울 것 같은 이 길 위에서 약 20년, 내 청춘을 보냈다. 후회 없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유로 위에서 거룻배처럼 매달려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때론 연수를 받으러 서울에 갔고, 경영전문석사 학위를 따러 서울에 갔고, 베트남어를 배우러 서울에 갔다. 또, 이 길을 따라, 애들을 태우고 에버랜드도 가고, 난지캠핑장도 가고, 고향 부산도 갔다.
난지캠핑장에서 바라본 강변북로. 북쭉으로 조금 더 가면 가양대교를 기점으로 자유로가 나온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는 자유로에서 벗어난다. 대신 아리랑고개를 넘어 내부순환로를 타게 될 것이다. 25년 전 고향을 떠나올 때 한 말을 이제야 실행에 옮긴다. "나 서울 갑니다." 나는 이제 12월 31일 날 보신각 앞에서, 또는 설날 광화문 앞에서 방송국 인터뷰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 자막에 이렇게 나올 것이다. '시민 멧별, 서울시 성북구'. 서울말도 다시 익히려 한다. "쌀밥을 많이 먹으면 안 되지요?"라고 또박또박 발음할 것이다. "느그들"이라고 하지 않고 "너희들"이라고 깍쟁이처럼 말할 것이다. '서울의 달'과 반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나에게 너무 어울린다고 여기며. 그리고 내 자식들은 서울사람이 될 것이다.
감나무를 심어볼 을지로도,
신문을 사러 돌아섰을 때 너를 다시 만난 시청 앞 지하철역도,
역에서 나와 '대~한민국'을 외쳤던 시청 앞 광장도,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와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이 아직 남아있는 덕수궁 정동길도,
바람 부는 날에 가야 하는 압구정도,
블루스를 듣고 싶을 때 가야 하는 신촌도,
허리케인 박이 레코드 판을 틀어주는 신당동 떡볶이집도,
물고기가 돌아온 청계천도,
마루치 아라치가 파란 해골 13호와 싸웠던 장충체육관도,
수지가 건축학개론에서 정조 또는 정종 또는 정약용의 무덤으로 알았던 정릉도,
남산도, 한강도, 숭례문도, 63빌딩도,
서울시립박물관도, 서울시립미술관도, 서울역사박물관도, 세종문화회관도,
종이 울리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그리고 내가 사는,
Never forget, Oh my lover,
서울특별시에서 갈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뭐... 그렇다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