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의 꽃은 무엇인가? 저녁을 먹고 모든 참가자가 빙 둘러앉아 시작하는 '술자리'가 아닐까 싶다. Latte는 그걸 '술자리'라고 불렀다. 그 술자리는 회장 인사말, 의결사항, 공지사항, 유의사항, 주의사항, 참고사항 등의 공식 행사를 짧게 마치면 바로 비공식 행사로 이어졌다.
참치캔, 새우과자 등의 빈약한 안주와, 소주, 맥주, 종이컵이 앞에 놓인다. 처음엔 소곤소곤 대다가 점점 목소리가 증폭되어 10분만 지나면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처음에 큰 원 하나로 시작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작은 원들 몇 개로 분열하고, 눈이 맞은 남녀나 흡연자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카오스가 된다.
밤이 깊어지면 술이 세거나, 잘생겼거나, 입담이 좋거나 하는 선배들을 중심으로 후배들의 최종 엔트리가 구성된다. 이때는 아직 순수해서 회장 주변으로 모이는 권력지향 행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술이 센 사람은 취기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잘생긴 사람은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은 입담이 좋은 'Big Mouth'가 하게 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전직 Big Mouth가 후배들에게 해줬던 재밌는 이야기 세 개와 무서운 이야기 두 개다. 유재석과 강호동에 필적하는 'MT계의 골든 마이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제 독자는 후배 입장이 되어 '어우야' 또는 '꺅' 등의 리액션을 준비하시라. 노약자 임산부를 위해 무서운 이야기 두 개는 마지막에 담았으니 취사선택하시기 바란다. 엄청 무섭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 가시라. 혹 모르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
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그게 뭐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주인공들은 20대 청년들로서 그때는 자기도 자기 맘을 알 수 없는 때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 주기 바란다. 또, '이러면 되잖아, 저러면 되잖아' 하고 논리적 반박을 할 수도 있는데 Latte는 그러면 선배한테 한 대 맞았다.
첫 번째 이야기
태초에 연인이 있었다. 둘은 착하고 예쁘고 잘생긴 선남선녀로, 둘이 함께 길을 걸으면 모든 사람들이 돌아봤다. 둘은 CC로 졸업 후 남자가 프러포즈를 했고 여자는 받아들였다. 남자는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프러포즈 반지 대신 소원을 하나만 얘기해 보라고 했다. 욕심 없는 여자는 당연한 것을 말했다. "난 웨딩드레스만 입는다면 더 이상의 소원은 없어."라고. 한 달 뒤 남자는 흥분해서 여자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남자는 선물상자 하나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가 상자를 열자 거기에는 웨딩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웨딩드레스가 원피스 미니스커트였다. 여자는 화가 났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소박한 꿈을 얘기했는데 남자는 그걸 장난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여자는 결심했다. 헤어지기로. 그리고 그 뒤로 둘은 만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여자는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딸이 학교에서 파티를 하는데 드레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자는 예전 그 드레스를 떠올리고 미니스커트니까 조금 고치면 딸이 입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자를 열고 드레스를 들어 올려 먼지를 터는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드레스를 툭툭 흔들자 열 두 단으로 접혔던 긴 치맛단이 펼쳐지면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모습이 드러났다. 상자 안에는 아주 작은 남자의 편지가 숨어 있었다. 잠도 안 자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마련한 거라고.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여기서 '어우야'라고 외치면서 옆 친구의 등을 마구 스매시하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태초에 연인이 있었다. 둘은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둘 만의 여행을 즐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풍랑을 만나 배는 좌초되고 그들은 겨우 목숨을 건져 이름도 모르는 섬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부상을 입어 시력을 잃게 된다. 운신이 어렵게 된 남자는 전적으로 여자에게 의존하여 조난 생활을 하게 된다. 여자는 과일도 따오고, 물도 길어오고, 풀뿌리도 캐오고 하면서 남자를 간호한다. 그녀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나날이 수척해져 간다. 어느 날 남자는 맛있는 냄새에 잠을 깬다. 뭐냐고 하자 여자는 갈매기 잡는 법을 알게 돼서 갈매기 고기를 굽고 있다고 답한다. 몇차례 갈매기 고기를 먹고 기력을 회복한 남자는 어느 날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여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섬에 들른 배에 의해 남자는 구조된다. 여자를 못 봤냐고 묻자 선원들은 못 봤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고 남자는 여자를 그리워하며 그 바다를 찾았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간 남자가 메뉴를 물어보자, 여주인은 우리 집은 갈매기 고기가 주메뉴라고 한다. 그때 여자가 줬던 갈매기 고기를 떠올린 그는 그 메뉴를 시킨다. 접시에 갈매기 고기가 나오고 추억에 잠겨 한입 먹어 본 순간, 남자는 울음을 터트리며 여자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다. 고기 맛이 자기가 먹은 맛과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 여자는 자기 살을 뜯어 남자에게 먹인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려고. 그리고 피를 흘리며 조용히 죽어간 것이다. 선원들은 시체를 발견했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남자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태초에 연인이 있었다. 둘은 CC로 매일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한다.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는 남자가 도서관이 열리자마자 자리를 잡고 여자를 기다린다. (Latte는 이런 남자를 '도자기=도서관 자기'라고 불렀다.) 나중에 여자가 오면 둘은 학교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간다. 돈이 없는 그들은 항상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눠 먹는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하다. 밤에 도서관이 닫으면 둘은 손을 잡고 집에 간다. 남자는 자취방으로, 여자는 지하철 막차를 타고 자기 집으로. (그 못 믿겠다는 의심의 눈초리, 당장 거두라.) 졸업반이 된 그들은 취직이 안 되어 걱정한다. 걱정이 더 많은 남자에게 어느 날 여자는 용기를 북돋아 줄 방법을 생각해 낸다. 프러포즈를 하기로 한 것이다. 여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자 뒤로 조용히 가서 왼쪽 귀에 대고 속삭인다. '우리 결혼해'라고. 그런데 남자는 말이 없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기야 우리 결혼해'라고 다시 속삭이지만 반응이 없다. 그 길로 여자는 남자를 떠난다. 취직 안 된다고 프러포즈도 거부하는 밴댕이 소갈딱지 하고는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고 여자는 우연히 대학 후배를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남자 얘기가 나온다. "언니 근데 A선배 하고 왜 헤어졌어요? 그 선배 죽었어요.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후배의 이야기를 이어 듣던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는다. 후배의 이야기는 이랬다. "A선배 왼쪽 귀가 안 들렸대요. 그게 큰 콤플렉스라 안 드러내고, 정말 가족들만 알고 있었대요. 선배하고 헤어지고 사람이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녔는데, 비 오는 어느 날 하필이면 왼쪽에서 오는 차 소리를 못 듣고 멍하게 길을 건너다가 그만."(어우야)
네 번째 이야기
MT를 갔던 친구 A, B, C, D(여)는 술을 더 마시고 싶어서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그들은 이미 술을 엄청 마신 상태다. 학교 운동장은 깜깜하다. 랜턴을 켜고 술을 마시던 중 A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B가 뺨을 때려 깨운다. "야 일어나. 잠들면 안 돼." 그걸 보고 있던 C가 말한다. "야 안 되겠다. 게임을 해서 잠을 깨자. 걸리는 놈은 인디언밥이다." C가 말한 게임 방식은 이랬다. 랜턴을 끄고 운동장 네 귀퉁이에 한 명씩 자리 잡는다. A부터 술병을 들고 다음 귀퉁이의 B가 휘파람을 부는 방향대로 찾아가 술을 따르고 술병을 넘기는 것이다. B는 원샷하고 다시 C에게로, C는 다시 D에게로. 이러다가 취해서 멈추거나 잠드는 사람이 벌칙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몇 바퀴를 돌다가 갑자기 D가 비명을 지르고 기절한다.
그렇다. 이 게임은 다섯 명이 필요한 게임이다. 첫 바퀴 마지막에 D는 C에게 받은 술병을 A에게로 가져갔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 A는 없다. 그럼 D에게 방향을 알려주려고 휘파람을 분 사람은 누구인가? D에게 받은 술병을 A에게 전해준 그는 어디서 왔는가? 귀신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마실 나온 동네 이장님이라고 대사 쳤다가 맞은 후배가 실제 있다.)
마지막... 이야기
MT를 갔던 친구 A, B, C, D(여)는 민박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이미 술이 엄청 취한 그들은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 산 정상에는 눈감고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A의 주장이었다. 원래 정상은 내일 아침 맨 정신에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B도 질세라 자기는 100m가 8초 대라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후라이를 깐다. C도 자기는 마라톤이 국민체조보다 쉽다고 덤빈다. 이 모든 것은 D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수작이란 것을 '국과수 검사 결과 따위는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 수 있다. A, B, C는 선을 넘고 만다. 밤 10시에 랜턴을 들고 정상을 올라갔다 오자고 결정한 것이다. D가 말렸지만 이미 그들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랜턴을 들고 출발한 그들을 D는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새벽 4시쯤 뒤척이고 있는 D방에 노크 소리가 났다. 열어보니 A와 B가 와있었다. "우리 왔어. 배고프다. 라면 좀 먹자." C는 어디 갔냐고 묻자 좀 뒤처져서 이제 곧 올 거라고 했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A와 B는 D에게 이제 가자고 했다. 어딜 가냐고 묻는 D의 팔을 붙잡고 그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던 D의 손목을 누군가의 손이 낚아채어 산 아래로 뛰기 시작한 것은 찰나였다. 한참을 뛰다가 돌아선 그는 바로 C였다."나만 살았어." (꺅)
그렇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그들 중 A와 B는 그만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뒤에 가던 C만 살아남은 것이다. 겨우 산을 내려온 C가 혼자서 멍하니 산을 오르는 D를 발견하고 손을 잡아 끌어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A와 B는 라면을 저승 가는 제사상으로 받은 것일까? 그리고 억울해서 D도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것일까? D가 만난 두 명은 귀신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Latte는 Big Mouth의 MT 출석 여부가 MT의 흥행을 결정지었을 정도였다. 그게 나라는 얘기는 아니다.(^^) 마지막에 보통 이렇게 쓰던데, 펜만 붙들고 산 지난 세월을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7월 맑은 날 하노이 홍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재에서 #멧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