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이웃집 아이들과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갔던 기억, 이름도 아련한 '공설'운동장에서 어린이날 행사와 가장행렬을 구경한 기억, 가을 대운동회에 비해 종목이 일부 축소된 소운동회라는 이름의 학교 행사, 운동회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가면 놓여있던 학용품, 빵, 음료수 등의 선물꾸러미. 정말 5월은 푸르렀고 우리들은 자랐다.
매년 부모님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어떤 사정으로 특별한 선물이나 이벤트가 없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부모가 된 나는 그때 부모님께서 미안해 하셨을 마음 자체가 특별한 것임을 안다. 가끔 어린이인데도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내 기준으로는 너무 슬픈 일이다. 너무 일찍 세상 속 어둠을 알아버린 어린이의 아픈 마음, 나는 부강이니 경제발전이니 하는 지상목표가 궁극에 추구해야 할 바는 어린이의 아픈 마음을 없애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청소년자살률이 엄청 높은 국가다.
선물꾸러미의 내용물을 어느 학부형이 협찬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협찬의 댓가성이다. 부모된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자녀의 친구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하는 것이 어떤 악과 연결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이 반대급부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어린이의 아픈 마음'을 폭발시키는 방아쇠일 뿐이다. 차라리 몽당연필을 쓰고, 배가 곯지언정 그 따위 선물 없는게 더 나은 것이다. 학창시절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말을 듣고 맘 속에 악마가 생겼다는 한 범죄자처럼 마음이 아팠던 아이는 사회를 아프게 할 수 있다.
브런치 이상우 작가님의 오늘 글에서 이런 문구를 인용한다.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1923년 방정환 선생께서 최초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며 외친 구호라고 한다. 어리다고 힘없다고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노동에 내몰리던 아이들을 어른과 동일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선구자적인 생각이 존경스럽다.
아버지를 운동회에 참석하는 아버지와 그렇지 않은 아버지로 양분할 때 나는 참석하지 않는 아버지에 속했다. 그 때는 가지 못 하는 분명한 사유가 있었는데 지금 남은 건 그 사유보다는 아쉬움과 후회뿐이다. 후회의 가장 큰 원인은 이제 그 일들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데서 비롯된다. 장성한 아들 둘은 이제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어린이인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왜 망각하거나 외면했을까? 마치 청춘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어리석음과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로알드 달의 '찰리와 쵸콜릿 공장'이 새로운 버전으로 개봉했었다. 잭 스패로우가 해적 선장이 되기 전 가위손을 인간의 손으로 갈아끼우고 초콜릿 공장 사장인 윌리 웡커로 등장한다. 기타를 배우기 전인 어거스트 러쉬는 찰리 버킷으로 등장하며, 윌리 웡커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인데 포스의 악한 세력에 빠지기 전의 두쿠 백작이 맡았다. 어린 첫째 아들이 소풍가기 전날 커다란 허쉬 초콜렛을 하나 사서 그 안에 모조품 골든 티켓을 넣어줬던 기억이 난다. 약 한시간 동안 파워포인트로 최대한 비슷하게 편집해서 A4 용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컬러 인쇄한 것이 다였다. 소풍날 돌아온 아이가 기뻐하던 모습이 떠 오른다. 그 비밀이 밝혀진 건 얼마 전 책상정리를 하면서 그 골든 티켓이 발견되었을 때였다.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만큼 아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좋았던 기억은 분명히 남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요즘은 흔해 빠진 밀크쉐이크라는 음료는 내가 어릴 때는 먼 동네에 제과제빵점을 가서 조달해 와야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어느날 먼 동네에서 술을 드셨을 때 그 음료를 포장해서 자식을 위해 귀가길에 들고 오셨던 날이 있다. 세상 참 희안한 것이 그 때는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다들 누런 친환경 종이봉투를 쓰던 때였다. 오는 동안 밀크쉐이크가 용해되면서 컵 주변의 공기를 액화시켰고, 그 액체는 친환경 종이봉투를 구성하던 식물섬유 조직을 약화시켜서 포장된 물체의 중력을 이기지 못 하고 봉투가 찢어져 버렸다. 뭔가 운반과정에서 섬세한 관리가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앞서 아버지께서 먼 동네에서 하신 일을 기술한 바, 설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 그 존재를 전해들은 밀크쉐이크의 잔해들을 등교길 동네 어귀에서 볼 수 있었다. 흰 페인트가 칠해진 듯한 흙바닥, 널부러진 용기와 포장지들.
그렇게 밀크쉐이크는 골든티켓으로, 골든티켓은 또 무언가로 대를 이어 갈 것을 기대한다. 그 유구한 대물림 속에 구태의연한 착함과 바름으로 우리는 손해도 보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는 떠났고 어버이만 남았다. 베트남에는 안타깝게도 어린이날이 없다. 하지만 추석에 어린이들을 재밌게 놀게 해주는 풍습이 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