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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Sep 02. 2020

나이 들어가는 노래

그래도 나는 나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 젖히는 소리' (1978, 가람과 뫼, 생일 中)


온 동네가 들었다면 가정에서 분만을 하던 시절의 노래일 것이다. 꿈속엔 용이 보이고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그 날, 동네가 떠나갈 듯 울면서 아이는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젖을 먹고,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생각의 성장은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이 훨씬 앞서는 법이다. 그리하여 또래 남자애들이 알통을 자랑하며 짐승같이 으르렁 대고 있을 때 여자애들은 은밀하게 너만 알라며 자기는 열일곱 살이라고 속삭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가르쳐 줄까요? 열일곱 살이에요.' (1938, 박단마,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中)    

 

내가 다닌 중학교는 주초고사라 하여 매주 월요일 아침에 시험을 쳤다. 그래서 주말은 딱히 공부를 하진 않지만 항상 부담을 느끼며 보내야 했다. '완전정복' 연습문제를 몇 개 풀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내게도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그것은 밤 열 시가 되면 따라라라라라 하는 시그널과 함께 시작되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였다. 일요일은 특별히 공개방송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그 유명한 '원조 마삼 트리오'가 자주 출연했다.


세 명 다 얼굴이 말처럼 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이수만, 이택림, 이문세(생년 순)가 구성원이다. 원조라고 명한 이유는 이택림 대신 유열이 합류하면서 결성된 '신(新) 마삼 트리오'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어느 날 그 이택림이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서 노래 한 곡을 불렀을 때 나는 거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당시 가본 적도 없는 서울의 명동과 무교동이 신기했고, 구름같이 멀겋고 약한 나이지만 넓은 가슴을 펴면 세상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부신 백마 네 필 바퀴 없는 마차를 달아 명동 좋고 무교동 좋아 포장마차는 어떠냐? (중략) 이리저리 둥실 뭉게구름처럼 약하고 창백해 보여도 아아 우리들의 넓디넓은 가슴은 하늘도 품고 또 남으리' (1982, 이택림, 스물한 살 적에 中)             ※원제는 '81 대학가요제에서 노래패 '스물하나'가 부른 '스물한 살의 비망록'    


나에게도 스무 살 시절이 왔다. 커피를 마시고 낭만도 찾고, 분노도 하고 좌절도 하며 소위 청춘이라는 것을 만끽했다. 요즘도 찾아보면 20대의 청춘을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노래들이 많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때는 그것이 언젠가 끝난 다는걸 잘 모른다는 슬픈 진실 이리라. 나도 20대 후반 '사회'로 진출하면서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청춘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김광석을 찾게 되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1994, 김광석, 서른 즈음에 中)


정말 정신없이 30대가 지나갔다. 아이 둘의 아빠가 되어 열심히 벌어야 했다. 직장에 깔린 계단도 남들보다 너무 늦지 않게 밟아 올라가야 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도 많이 왔다. 모든 선택이 다 성공적이진 않았다. 어떤 선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서른몇 살의 나는 겨우 지푸라기 몇 가닥을 붙잡고 허우적거리는 내가 자주 불쌍했다. 뜯어내는 달력처럼 날아가 버리는 날들을 아쉽게 바라만 봤다.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뜻의 '미혹'에 빠져보지도 못 한 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가 왔다.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 내 나이 마흔 살에는' (1995, 양희은, 내 나이 마흔 살에는 中)


내년이 되면 나는 한국 나이로 쉰 살이 된다. 쉰 살에 대한 노래는 없다. 너무 황당해서 노래 부를 기분이 아니거나, 여전히 너무 바쁜 나이라 겨를이 없거나, 문자 그대로 지천명(知天命) 해버려서 굳이 흥감 떨지 않아도 되거나, 그런 이유들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당사자들의 억한 심정을 대신 따져주는 노래 하나가 인기 있다고 한다. 박명수 식으로 호통치며 시작하는 첫 부분이 부쩍 '화'가 많아진 그 나이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2012, 오승근, 내 나이가 어때서 中)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읽고 있는 책 제목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기대했는데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이 더 든다. 인생지침서 따위들의 가장 큰 맹점은 독자 개인이 일반화되거나 작가의 수준에 본인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삶의 결이 사람마다 다른데 나이 들면 그렇게 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책을 읽을 시간에 눈을 감고 나 자신을 돌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답을 모른다기보다는 답을 깊이 생각 못 해 봤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된 젊은이는 못된 늙은이가 될 뿐이다. 그동안 착하게 살았다면 착한 나를 들여다보면서 착한 늙은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괜히 일반화되거나 남들과 비교당하면서 내 인생을 모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 아쉽거나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도라지 위스키 한 잔으로 퉁치면 되는 것이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1994,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中)   ※아이유도 불렀다.(궁금하면 Click here)


노래도 세월 따라 나이 들어간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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