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안에서도 지하철역까지 2분거리인 복잡한 동네에 살다 온 나는 정적인 제주의 공기에 적응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이젠 멋들어진 카페, 관광지보다 지역 도서관이나 복지관, 오름 등이 나에게 가장 좋은 공간이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나와 같은 40대부터 그 이상 연령대의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제주에 온 지 최소 3년부터 10년 정도가 대부분이다.
제주에 적응하는데 1년에서 최대 5년이 가장 힘들고, 그 이상이 되면 반대로 육지 적응이 어려워진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이 딱이다. 이곳에 꽤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뭔가 해탈한 듯한 유연함이 느껴지는데 동시에 강한 고집도 보인다. 그들은 이곳에서 (특히 내가 사는 다소 구석진 곳) 유난히 무언가 배우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쁘게 매일같이 제주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며 문화활동에 참여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건 제주엔 자기 계발에 적합한 강좌나 문화 프로그램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거기다 이 모든 게 대부분 무료다!
제주 각지의 도서관 또는 자치기관에서 요가, 글쓰기, 라틴공예, 캘리그래피, 드로잉, 음악공연 등 끊이지 않고 열리는데 참가비조차 받지 않고 신청만 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니 처음엔 뭐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여름엔 매주 금요일 밤마다 유명한 가수들이 힐링하라며 음악을 들려주고 내가 매우 존경하는 장필순, 이은미와 같은 가수들이 사회복지관에서 나눔 공연을 한다.
이것은 나에게 문화적 혜택 이상의
매주 당첨되는 복권 같은 기분이다.
동녁도서관에서 열리는 책 만들기 강좌 ㅣ 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장필순 음악가의 공연
요즘 난 요가, 책 쓰기 수업에 참가하고 있는데 끝나고 나면 나 자신이 꽉 채워진 기분에 뿌듯하다. 물질적인 꾸밈으로 나를 채우지 않았는데 잔뜩 꾸며진 느낌이 들고 대충 입고 세수만 겨우 하고 나와도 내 모습에 당당하다. 무슨 효과일까?
확실한 건 제주에 여행 와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제주만의 매력에 너무나 강하게 깊게 빠져있다는 거다.
제주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여행 온 관광객들 사이에 애매하게 살아가는듯한 느낌이 이젠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다. '난 어디 사람이야'라는 출신이 중요하지 않은, 지금의 행위에 집중하고 만족하며, 요즘의 욕구에 최선을 다하는 제주 이주민의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