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유산, 6번의 도전으로 쌍둥이를 만난 과정 세 번째 이야기
참 신기한 일이다. 왜 힘든 일은 항상 남편이 없을 때 일어나는지...
‘아닐 거야. 착상하려고 생긴 출혈일 거야. 괜찮을 거야’
내 기대를 처참히 무너트리듯 야간근무 의사가 건조하게 말한다.
‘내일 아침 수술하시죠.’
익숙한 듯 말하는 의사에게 ‘당신은 그 말이 그렇게 쉬워요?’ 따지고 싶지만 꾹 참고 묻는다. ‘혹시 기다려보면 심장이 다시 뛰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 의사는 판사봉 휘두르는 판사 같고, 난 진찰실이 아닌 재판장에 있는 기분이다.
12주 동안 나와 하나가 되어있던 아이를 내 몸에서 억지로 꺼내야 하다니. 아이가 그간 많이 커서 수술을 쉽게 만드는 약을 미리 먹었는데 너무 아파서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그 흔적은 아직도 내 집에 훈장 마냥 남아있다. 손가락만 살짝 베어도 아픈데 자궁을 찢어내는 약이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지를 갈라놓는 듯한 고통을 12시간 동안 참아야 한다.
입에서 욕이 나온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클래식 들으며 태교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괴물로 변해 온갖 욕으로 화를 낸다.
‘너무 아파. 씨발. 정말 너무 많이 아파. 나한테 왜 그래.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씨발!’
수술실은 어찌나 간이 창고 같은 느낌인지 쌓여있는 의료용 박스들 사이에 흉기같이 생긴 굴욕 의자가 날 기다린다. 분명 어제까진 생명의 의자였는데 지금은 꼴도 보기 싫다. ‘금방 끝날 거예요. 한 숨 자고 일어나요.’ 수면마취제에 눈앞이 흐려지며 속으로 끝없이 말했다.
‘하느님, 나 눈 뜨면 당신 미워할 거예요. 딱 기다려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 몸이 아이를 갖기엔 부족한가? 의사가 말했던 난소 나이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남들 다 갖는 아이를 난 왜 가질 수 없지?
몸의 고통보다 더한 건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나 자신에 대한,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생한 몸을 위한다며 미역국을 먹곤 나 까짓게 밥은 먹어 뭐하냔 생각에 토하기를 반복한다.
유산 수술을 하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유산은 숨기기 바쁜 뒷담화 주제이기에 많은 직장인 여성들이 하루 이틀 병가만 내고 다시 노동의 현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바쁘게 지내야 고통을 잊을 수 있단 생각에 스스로 일을 찾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 며칠 눈물로 괴로워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없이 움직였다. 다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처럼 활짝 웃으며 당당해지려 노력했다.
‘아직은 아이 낳을 때가 아닌가 보죠. 난 괜찮으니 그 얘긴 안 해도 될 것 같아.’
지나고 보면 이 부분이 가장 바보 같다. 솔직히 말해 정말 죽을 듯이 힘들고 세상과 나 자신에 화가 나고 무기력하고 살아갈 힘조차 없다. 거미줄 같은 우울감이 온몸에 휘감겨 있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화려한 옷을 입고 피에로 마냥 웃으며 그런 내가 진짜 나 자신이라 착각하며 ‘난 괜찮아’를 강요하는 모습.
힘들면 힘들다 말하고, 그럼에도 눈물이 나면 충분히 울고, 그렇게 울고 나서도 울화가 치밀면 화를 내야 했다. 이유 없이 남편이 미워지면 당신 밉다 말해버리고,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음 잠시 숨어있어도 되는 거였다. 세상을 등지고 싶은 나를 내가 감싸주고 바라봐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때의 난 괜찮은 척하기 바빴다. 아픈 나 자신을 만나는 게 두려웠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