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유산, 6번의 도전으로 쌍둥이를 만난 과정, 다섯 번째 이야기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 하지 않을까?’
퇴근 후 한잔하던 남편이 넌지시 시험관 의학센터의 팸플릿을 건넸다. 실패를 숨 쉬듯 경험해선지 ‘임신’이란 단어만 들어도 짜증 나면서 한편으론 내 몸 어딘가 달려있는 혹 덩어리 마냥 신경 쓰인다.
‘그렇지. 이제 39살인데 더 이상 미룰 수 없지.’
빡빡하게 잡혀있는 스케줄 사이로 일정을 잡아 새내기처럼 진료실에 앉아 의사의 설명을 듣는다. 그간 유산하며 생긴 자궁근종을 제거하고 두 달 뒤 정. 난자를 채취해 냉동배아를 만들 거라고. 그리고 잘하면 한 달 뒤 아니면 두 달 뒤 이식하는 여정으로 최소 6개월의 플랜을 설명한다. 더불어 생각이 있다면 시험관 시작에 앞서 인공수정을 한번 더 해봐도 된단다. 정부지원은 받을 만큼 받아 거금 60만 원을 내고 해야 하는데 만약 성공하면 시험관 시술을 안 해도 되니 0.1%의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다섯 번째 인공수정 도전! 하지만 역시 실패.
내 그럴 줄 알았지. 어느새 난 성공하면 이상한 삶을 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역. 그중 가장 멋들어지게 생긴 건물에 난임센터가 있다. 정장 차림에 샐러드로 브런치를 즐기는 콧대 높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과배란 주사기를 잔뜩 들고 집으로 간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몸은 나팔관을 통해 번갈아 가며 하나씩 난포를 만드는데 시험관 시술은 더욱 건강한 배아를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과배란 주사를 놓아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난포를 포도나무의 포도알로 비유하는데 난 10개의 포도알이 열렸다. 그리고 정자 채취실을 들락날락하며 만들어진 남편의 건강한 짝꿍과 합쳐져 태아의 시작 단계 ‘배아’로 만들어진 게 최종 5개. 어쩌면 내 아이가 될지 모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포들이 냉동 중이다.
배아가 착상하는데 방해될 수 있는 근종을 긁어내고, 한 달간 매일 주사 3개를 내 배에 찌르며 자궁을 키우는 과정은 아랫배가 찢어질 듯 고통스럽다. 마치 과학실에서 실험 중인 동물이 되는 기분이다. 특히 난포 터지는 주사는 정해진 시간에 놓는 게 중요한데 전국에 강의를 다니던 난 기차 화장실에서도, 렌터카 안에서도 아이스팩에 감싸진 주사기를 들고 다니며 스스로 찔러야 했다. 주삿바늘 자국에 더 이상 찌를 곳이 없는 아랫배를 보며 우는 날이 얼마였는지, 불쑥 남편에게 전화해 서럽다며 소리 지른 게 몇 번이었는지, 악에 받쳐 생각한다.
‘이러고도 안되면 진짜 나 내 인생 살 거야. 진짜 마지막이야.’
병원엔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초음파 검사실에선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데 기뻐서 내는 흐느낌, 슬퍼서 퍼지는 울음소리. 모두 다른 의미로 희망과 절망을 맛본다. 최신식 의학기술을 보유한 곳이라 시설이 좋아 보이는데 정자 채취실은 여기나 저기나 똑같단다. 어두운 밀실에 언제 닦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편안한 의자 하나, 그리고 채널 선택권 없는 노골적인 화면 송출.
오늘은 4일간 배양된 냉동배아를 내 몸속에 이식시키는 날.
‘몇 개 이식하시겠어요? 최대 두 개 가능해요.’
의사의 말에 어리둥절하지만 벼랑 끝에 놓여 고민할게 뭐 있으랴.
‘무조건 많이. 두 개 넣어주세요. 하나라도 성공해야죠.’
살금살금. 공중 부양하듯 조심히 걷는다. 계단도 오르내리지 않고,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차가 빵빵거려도 손들고 천천히 지나간다. 호두, 두부, 시금치, 아보카도, 추어탕... 물리도록 먹었지만 눈 감고 다시 한번 씹어 넘긴다. 정확히 6개월 15일을 임신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거 하나 못 먹겠나.
이제 10일 뒤면 나의 인생이 다시 한번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