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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May 25. 2020

플랜트 킬러

연쇄살식마

나는 4년 차 식물인이다. 애식인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나름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식물방황기를 거치고 나는 선인장과 크로톤에 정착을 했다. 이 식물방황기가 무엇인가 하면 그냥 닥치는 대로 키웠다는 뜻이다. 많은 식물들을 얻어서 키우기도 하고, 직접 사서 키우기도 하면서 나의 취향과 그 식물과의 합을 알아갔었다. 언뜻 합리적인 과정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반전이 있다. 현재 내가 키우는 식물은 '선인장'과 '크로톤' 뿐이기 때문이다. 즉, 나머지 식물들은 내 손으로 다 죽였다.


앞으로 쓸 '연쇄살식마' 의 글들은 내 손으로 죽인 식물들에 관한 고백록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소중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지만 그릇된 정성으로 떠나 보냈던 식물들의 기록이 될 예정이다. 내가 말려 죽인 식물들, 내가 얼려 죽인 식물들, 내가 타 죽인(?) 식물들까지 각 분야별로 존재하는 죽음의 이면들을 파헤칠 것이다. 직접적이고, 잔인한 내용이지만 쓰고 싶었던 까닭은 '너무 사랑했지만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역설적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픈 마음이 들어서다.


대부분의 내가 키웠던 식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내가 애정하던 식물들이었다. 너무 키우고 싶지만 키우기를 포기한 식물들이기에 아픈 손가락이라 할 수 있겠다. 설레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한 이 순간들의 기억은 내 삶의 한켠에 존재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나의 식물들, 나의 손때가 탔던 식물들 그리고 나의 손으로 묻어주었던 식물들을 기록하면서 그 당시의 감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려 한다. 그리고 글의 마무리에서는 그리운 식물들에 대한 마음을 담아서 추도사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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