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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Mar 12. 2023

뭐 먹을래? 3화: 내가 만든 죽과 계란탕

쇠빨대와 집순이의 어쩌다보니 맛기행



1. 집순이

죽을 만들었다. 저번 주인가 몸살 기운이 돌자 엄마가 후딱 죽을 만들어줬는데 너무 맛있었다. 씹기도 편하고, 소화가 잘되는 죽을 오랜만에 먹으니 그 매력이 푹 빠졌다. 평소 나는 음식 캡슐이 나오면 기꺼이 저작운동을 포기하고, 음식캡슐로 끼니를 때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식욕이 없는 편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음식이 내 삶에서 1순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특히 엄마와 동생은 이런 내 생각이 귀차니즘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귀찮은 걸 어떡해. 


솔직히 카레를 만들고, 약간 자신감이 올랐던 것 같다. 엄마한테 조언을 구하니 엄마는 ‘어려울 걸?’ 라고 말했다. 나는 약간의 도전정신이 올라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또 뭐 먹지?’ 라는 생각을 하니 약간 피곤하기도 하고, 동생도 딱히 아이디어가 없어 보여서 또 다시 도전 요리먹방을 시도한다! 


본디 죽이란 아픈 사람이 먹는 용도 아니겠는 가. 그러니 충분히 묽으면서 씹기 쉬운 상태를 유지하되 나는 병자가 아니니 적당한 간을 추가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계란죽 레시피를 확인하니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마침 동생이 계란탕 비슷한 것을 보내와서 대충 레시피를 비교하니 겹치는 재료도 있고, 요리하는 동선도 얼추 비슷하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계란탕도 추가!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퇴근 후 배고픈 상태에서 나는 전투적으로 요리태세에 돌입했다.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레시피를 정독 하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그리고 시작된 2개의 요리. 계란탕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죽이 시작되자 생각보다 어려웠다. 간은 계속 심심했고, 내가 생각한 묽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란탕이 충분히 자극적인 맛이어서 죽은 심심해도 괜찮지 않을 까? 같이 먹으면 딱 맞지 않을 까?’ 싶었다. 그렇다. 충분히 지쳐 있던 나에게 이런 생각은 달콤했고, 배고팠다. 


그리고 서둘러 완성된 죽과 탕을 먹어보니 예상은 적중했다. 계란탕은 자극적인 맛이었고, 약간 중화풍의 향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죽은 그냥…그랬다. 들어간 재료들이 무색하게 밥맛만 가득했고, 묽기는 생각만큼 묽지 않았다. 하지만 계란탕하고 같이 먹으니 제법 먹을 만했다. 다행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먹을 만하는 음식을 또 다시 만들어냈다. 중독성 넘치는 계란탕은 덤이었다. 사실은 계란탕이 더 맛있었지만! 


언젠가 슴슴한 맛을 표현하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고 들은 적 있다. 나물 무침 같은 것도 먹기는 쉽지만 그 맛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들은 적 있다. 그때는 와닿지 않았는 데 이번에 죽을 만들면서 확 와닿았다. 자극적인 것은 만들기 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슴슴한 것은 어렵다. 재밌는 일이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은 나의 두번째 요리는 나쁘지 않음! 




2. 쇠빨대

떡볶이나 분식류는 항상 맛있게 먹는 우리 집 사람들이지만 분식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고, 카레는 냉동실에 들어가서 미래의 가족들의 비상식량이 되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우연 찮은 알고리즘이 가져다 준 계란과 맛살을 사용한 중식계란탕을 발견하였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메모장에 옮기기 귀찮아져서 누나의 카톡으로 링크를 보냈다. 그 후 잘못됨을 느낀 것은 누나의 답장을 보고 나서였다. 


‘안 어렵네? 이것도 내가 이번주에 만들어 볼께’


지난번에 카레를 너무 오냐오냐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아니면 내가 저 요리를 먹고 싶어 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아니면 카톡을 보낸 것이 잘못이었나? 거기다가 나름 게으른 사람이 운동도 하고 부지런하게 이번주에 굳이 만든다고 하다니! 안 그랬으면 좋겠다. 혼란의 끝에 누나의 추가적인 한마디 


‘죽 만들 때 옆에서 같이 하면 되겠네’


화구를 두 개 사용한다는 말에 내 입안에 대해 사죄를 올렸다. 항상 맛있는걸 위주로 넣어주고 느끼게 해주겠단 내 다짐은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가 했었다. 요리 레시피는 무척 쉬워 보였다. 재료도 하필 카레를 한지 얼마 안지나 다 있던 상황이었다. 맛살과 전분가루만 사오면 되는 상황에서 누나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왔다.


‘맛살, 전분가루? 없어도 되겠네’


나는 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입에 넣을 때 살짝 꾸덕한 식감을 무척 좋아한다. 또한 맛살이 부드러운 식감을 잡아줘서 맛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여기서 이것을 빼버린단 말에 설득이 들어갔다. 맛살이 비싼건 비싼데, 슈퍼에서 김밥용을 사면 3천원에서 5천원대에 저렴한 것을 살수 있다. 그것만 넣어도 식감이 

달라진다. 전분가루는 필요하다. 


‘집에 전분가루가 없다고?’ 


사실 있긴 하다. 사 둔지 3년은 족히 넘었고 체감상 5년은 되 보이는 유통기한을 1년을 넘게 넘겨버린 정체불명의 조미료로서 집 냉장고에 한구석에 있었다. 그런걸 넣어도 상관 없다면 괜찮겠지만 혹시 몰라서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오게 시켰다. 사실 전분가루도 그렇게 비싸진 않아서 두 개 해서 얼마 안 들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다른 재료가 없지 않을까 싶어서 집 냉장고를 뒤져보니 파도 적었다. 파도 사오라고 말 한 뒤에 누나는 알겠다 하고 3가지 재료만 더 사오고 집에 돌아왔다.


퇴근 이후 간단한 운동까지 마치고 돌아온 누나는 이미 녹초가 되었고 나는 걱정이 되어서 누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힘들 것 같은데 내일이나 모래에 할래?”


요일은 목요일이라 금요일 퇴근 이후에 즐거운 마음이나, 토요일에 푹 자고 일어나서 운동을 안하는 체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 물었다.  


 “아니야 미루면 그게 더 귀찮아져”


그러고는 30분은 쉬고 일어나서 요리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내 방에서 잠시 할일 마무리 하고 나와서 재료들 칼질이나 도와야겠다 하고 나왔다. 이미 채소들은 계란탕에 적당한 크기의 상태로 칼질이 마무리 되었고, 접시를 두 개로 나눠서 채소를 옮겨 담고 있었다. 


“저 채소들이 계란탕에 들어갈 거지?”
 “이게 죽, 이게 계란탕”


아차 내가 누나에 대한 배려가 짧았다. 누나는 여태 살면서 많이 아팠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죽을 먹어본 적이 적었고, 그에 따라 죽에 야채 크기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었다. 반면 조금만 아파도 엄살 잔뜩 부리며 바로 약을 찾는 나는 죽도 누나에 비하면 자주 사먹는 편이라 죽 내용물의 크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있었고, 얘기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이미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는 표정이라 아무 말 없이 그냥 옆에 앉았다.


“게 맛살이나 찢고 있을게”
 “응 고마워”


죽은 메인이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옆에서 전분물과 계란풀기 등등 정말 간단한 잔업만 도와줬다. 그나저나 게맛살은 정말 맛있는데 잘 안 찢겨서 또 하긴 귀찮았다. 

 화구 두 개를 열심히 레시피를 보면서 만들던 누나는 차근차근 요리를 마무리했다. 누나의 요리는 내 입에 대해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네, 하나는 맛있게 됐구나’ 하며 위로를 주었고, 내 머리에 요리 종류를 하나 바꾸었다. ‘이건 죽이 아니다. 야채를 섞은 질은 밥이다. 적어도 저녁에 소화가 안되진 않을 것이다.’ 하고 말이다. 물이 너무 적고, 간이 심심했다. 화구를 두 개를 관리하다 보니 그렇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옆에 계란탕은 진짜 맛있었다. 간이 살짝 아쉽고, 전분으로 국물의 농도를 좀 적게 잡았지만 그래도 훌륭히 맛있게 먹었다. 


 아니 근데 그래서 우리 언제 떡볶이 먹어?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은데 뒷정리 힘들어 거의 내가 하 잖아. 시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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