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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꿍 May 30. 2020

#4.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남자..? 누구 만나지...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남자


이 말은 참으로 자주 들었는데, 여자 입장에서 들을 때마다 마음에 안 들었다. 남자는 능동적으로 본인이 선택하고, 여자는 수동적으로 선택을 기다려하는 존재라는 말인가? 나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있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여자의 경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려면 그 남자가 나를 먼저 좋아해야 하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에, 그 남자가 나에게 다가올 더욱더 희박한 가능성이 전제해야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20살, 나는 첫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 법칙 따위는 무시해버렸다. 4월 달, 대학교 같은 반 동기가 마음에 들어 그 남자애한테 먼저 수업 끝나고 술 한잔 하자고 말했고, 술이 어느 정도 취해서 용기가 생겼을 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나 너 좋아해.. 사실 이 날 고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래는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그 아이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었는데,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는 질문에 그 아이가 '있다'라고 대답하면서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대학 입학하고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아마 개냥이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것이 인기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얼굴은 첫눈에 보았을 때, 말을 쉽게 못 걸게 고양이처럼 차갑게 생겼는데, 성격은 개... 같... 음.. 강아지 같다고 많이 들을 정도로 사람들한테 관심도 많고, 만나면 마냥 반가워하고... 반전 매력이 작용했던 것일까..(우웩.. 스스로 반전 매력이라니..ㅋㅋ)


덕분에 대학 입학하고 내가 좋아했던 남자아이를 제외하고 4명의 남자가 동시에 다가왔었다. 한 명은 한 학번 선배, 나머지 3명은 같은 반 동기였다. 선배가 그 당시 나이, 학번에서 우위를 점하다 보니, 큰 목소리로 소문을 내고 다녔었다. 나 쟤 좋아한다! 같은 반 동기들의 경우, 밥 한 번 먹으면서 나의 입장을 조용히 전달했다. 미안한데, 난 다른 사람을 좋아해..


문제는 선배였다.. 생각해보면 1살 오빠인데, 그 당시 선배는 왜 이렇게 하늘 같고, 무섭던지.. 거절하기 무서워서 나는 피하기로 결심했다. 3월 신입생 초기부터 공강 시간엔 과방에 가면 마주칠까, 도서관에 가있기 일수였고, 수업이 같이 끝나는 날엔, 같이 기숙사 걸어가자는 제안을 거절하려고, 수업 끝나자마자 또 도서관을 갔었다. 덕분에 입학하자마자 아직도 고등학생 때처럼 열심히 공부한다는 모범생 이미지를 구축했었다...


어느 정도 잘 피해서 나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나는 내가 좋아했던 남자아이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사건>

나 : 너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아이 : 음.. 응응, 관심이 가는 여자애는 생겼어

나 : (내심 나 이길 바라며) 아 진짜? 혹시 같은 반이야?

그 아이 : 어..? 어...ㅎㅎ 비밀로 해줘

나 : (오.. 진짜 나인가..?) 오.. 혹시 같이 신입생 환영회 공연 준비했었어?

그 아이 : (당황하며) 응.. 어떻게 알았어?

나 : (나도 함께 준비했었기에 기뻐하며) 그냥.. 감이지! 그러면 그 여자애 키는 어느 정도 돼?

그 아이 : 음, 내가 여자 키는 잘 모르는데.. 160cm 넘나..?

나 : xx이 정도가 160cm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아이 : 아 그러면 160cm, 이하다!

나 : (여기서 급..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168cm인데...)아.. 그래..?

그 아이 : 너는 그 선배지?

나 : 뭐?? 아니??? 나 선배 좋아한 적도 없어! 요즘 피해 다니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 아이 : 아 그냥 선배들이랑 동기들이 다, 그 선배가 너 좋아하고, 너도 거절 안 했다고 하길래

나 : 아니야!! 나는 반 동기 좋아해!! 그리고 그건 너야...

그 아이 : (많이 놀래며) 뭐...? 나야..?

나 : 응.. 많이 놀랬어..? 싫어...?

그 아이 : 아니.. 싫다기보단.. 너는 당연히 그 선배 사귈 줄 알고.. 생각을 아예 못했는데..

나 : 그러면 내가 싫은 건 아니라는 거네..? 나랑 사귈래?

그 아이 : 그래..ㅎㅎ


이렇게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남자' 법칙에서 어긋나는데, 2년 8개월(나의 유일한 1년을 넘는 연애)을 크게 한번 안 싸우고, 20대 초반을 풍부하게 꾸며주는 이상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래! 여자도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를 쟁취하면 되는 거야! 다 옛말이지! 왜 기다리고 있어야 해!


하지만 앞뒤 안재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사귈 수 있다는 생각은 근거 없이 너무 높아진 자신감에서 나온 잘못된 생각이었다. 첫 남자 친구는 그 아이의 착한 성격, 알게 모르게 나에게 있던 호감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두 번째 남자 친구를 사귀기 전, 나는 '여자가 먼저 고백해도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어!'라는 확고한 생각에 또 호기롭게 고백을 했었다. 그리고 #1. 나만 놓으면 끝나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고백한 연애가 실패하고, 그다음 남자 친구도 안 좋게 끝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제 나 좋다는 남자를 만나보자.. 만나다 보면 좋아진댔어..! 나의 4번째 남자 친구는 스터디에서 알던 오빠였다. 당시 내가 사귀던 남자 친구의 직장 면접 스터디였기에, 나는 남자 친구를 숨기고 스터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일주일 동안 하는 스터디였기에 굳이 나의 개인 사정까지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 일주일을 매일 면접 준비하고, 함께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다 보니 호감이 생겼는지, 면접이 끝나고 그분이 나에게 고백을 했었다. 그도, 나도 그 회사에 합격을 했기에 회사 선배인 나의 남자 친구의 존재가 껄끄러워질까 봐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을 못 하고, 그저 미안하다고 거절을 했다.


다행히도 나는 다른 회사가 합격되어 최종적으로 다른 회사로 가게 되며 매우 껄끄러운 상황은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스터디 오빠의 수줍은 고백은 지속되었다. "지금은 어떨까? 내가 널 조금 더 기다릴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던 중, 남자 친구와는 우리만의 이유로 이별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나를 더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보겠다고 생각하며, 내가 그다지 마음은 안 생기지만, 싫지도 않은 스터디 오빠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배려심 넘치는 성격,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기다리고, 내가 운동 갈 때마다 데려다주며, 나의 쌩얼도 너무 귀엽다고 나의 자존감을 팍팍 높여주는 남자


4번째 남자 친구는 직전 연애에서 결핍되었던 사랑받는 기분을 나에게 지속적으로 넣어주었다. 근데도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내가 원하던 남자다, 나는 몹시 사랑받고 있다.'라고 생각을 해도, 막상 얼굴을 보면 두근거림이 없었다. 전혀 못생긴 얼굴이 아니었는데도,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같이 밥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으며, 함께 걸을 때 손을 잡기 싫어서 내가 새끼손가락만 잡고 걸어 다니곤 했다. 한 달 정도 사귄 무렵, 도저히 감정이 생기지 않고, 그분에게 이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결국 내가 먼저 손을 놓으면서 이 연애는 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보기도 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보기도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 상황에서 여자/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 여자 모두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사랑을 하는 것이고, 누구는 사랑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애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나가면서 단순히 1+1이 아닌,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인데, 한쪽만 좋아해서는 그 효과가 제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저런 말이 있는 이유는, 남자는 본인이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여자가 잘해줘도 본인의 결정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지만, 여자의 경우, 남자가 꾸준한 사랑을 표현할 경우, 어느 정도 결과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나만 좋아하는 연애에 지쳐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는 것은 결국은 한 사람만 좋아한다는 상황에서 동일하다. 입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내가 힘들게 매달리던 연애에서 다른 사람이 힘들게 매달리게 하는 연애로... 0에는 무한대를 곱해도 0인 것처럼 내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남자를 만나도 나는 감정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관심이 가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확 바뀌어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상황이기에 사뭇 다르다고 생각하다.


만약 퍼주던 연애에 지쳐 '나도 사랑받는 연애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퍼주는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면 당장 멈추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는 상대방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본인도 착한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한다는 생각에 심적으로 괴로워질 수 있다. 내가 4번째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자주 들었던 생각은 '아 진짜 나 못됐다. 나는 왜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행복하지가 않지. 나는 평생 행복할 수가 없는 건가?'이었다.


사랑에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잊으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홀로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 할바엔 본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고 싶다. 스스로 좋아하는 취미도 찾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며 본인 정비의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하다. 나는 4번째 연애 전까지만 해도 연애에 쉼 없이 달려오며 처음으로 약 10개월 정도 홀로 시간을 보내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쳤던 인간관계에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연애에서 상처를 받고 아픈 상태라면 다른 연애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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