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앤 데드> 리뷰
나는 서부영화 세대가 아니다. 내가 자란 시절엔 서부극이 이미 한물간 장르로 취급받았고, 극장가를 지배한 건 화려한 CG로 무장한 판타지 영화들이었다. 내가 본 서부영화라고 해봐야 <장고: 분노의 추적자>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2010년대 영화로, 정통 서부극이라기보다는 현대적인 비틀기가 들어간 스타일리시한 오마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퀵 앤 데드>는 내가 처음으로 접한 ‘고전 서부극 감성’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는 ‘리뎀션 마을’에 한 여성 총잡이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숨긴 채, 악덕 시장 존 헤로드가 주최하는 권총 결투 대회에 참가한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정의로운 총잡이가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서부극이지만, 개성 넘치는 총잡이들과 긴장감 넘치는 속사 대결 토너먼트 덕분에 끝까지 흥미를 유지한다.
특히 등장인물들은 모두 별명으로 불린다. 주인공 앨런은 여성 총잡이란 이유로 “레이디”, 젊은 총잡이는 “키드”, 죽일 때마다 에이스 카드를 추가하는 총잡이는 “에이스 핸론”, 그리고 얼굴에 흉터가 많은 인물은 “스카”. 이런 작명 방식 덕분에 캐릭터의 개성이 한눈에 들어오고, 관객이 이름을 기억하기도 쉽다.
최강의 총잡이지만 ‘불살’을 선언한 코트, 그리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소년 ‘키드’는 주인공 ‘레이디’와 얽히며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토너먼트라는 설정 때문에 호감이 가는 캐릭터들끼리 싸우게 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깔려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좋아하기에, 그의 젊은 시절을 담은 “키드”라는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꼈고, 그가 무사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강렬한 서부극에는 반드시 인상적인 악당이 필요하다. <퀵 앤 데드>의 메인 빌런 ‘존 헤로드’는 마을을 장악하고 무자비한 폭정을 휘두르는 시장이다. 그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고, 약자를 가차 없이 짓밟으며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를 단순한 ‘피도 눈물도 없는 폭군’이 아니라, 인간적인 결함이 있는 캐릭터로도 그려낸다. 특히 젊은 총잡이 ‘키드’가 그의 아들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키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토너먼트에 참가하지만, 정작 ‘존 헤로드’는 그를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무정한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키드와 마주한 순간순간, ‘헤로드’는 미묘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관계 덕분에 ‘헤로드’는 단순한 클리셰 악당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된다.
아들에게 아버지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존재다. 때로는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애틋하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신화 속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종종 갈등의 축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무너뜨린 이야기처럼, 아들은 결국 아버지와 맞설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퀵 앤 데드>의 주요 인물들도 모두 ‘아버지’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레이디’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과거 보안관이었지만, 젊은 시절의 ‘존 헤로드’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복수심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아버지를 잃은 개인적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키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헤로드’는 그런 아들의 감정을 외면하고, 이는 둘의 관계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코트’는 과거 ‘존 헤로드’의 수하였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명령을 따르며 총잡이로 성장했지만, 결국 ‘헤로드’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스승과 제자 혹은 유사한 부자 관계처럼 보인다.
이처럼 아버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바라보면, 영화가 단순한 총격 액션 이상의 서사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키드’는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원하지만 끝내 좌절하고, ‘코트’는 아버지 같은 존재와 결별을 시도하며, ‘레이디’는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한다. 이 모든 관계가 영화의 갈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거친 모래바람, 번쩍이는 보안관 배지, 총잡이들 간의 속사 대결. 내가 서부극을 떠올리며 기대했던 요소들이 유치하지 않게, 오히려 더 강렬한 몰입감을 주며 구현되었다.
나는 평소에 보드게임 <뱅>을 즐긴다. 플레이어들이 보안관과 무법자로 나뉘어 총격전을 벌이는 이 게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드게임이지만 정작 서부극이라는 장르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퀵 앤 데드>는 그런 나에게 서부영화의 매력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왠지 오랜만에 친구들과 <뱅>을 하며 서부극의 세계에 한 번 더 빠져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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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앤 데드 : 아버지와 총잡이들:_3.0_영화 퀵 앤 데드 감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