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2
수강 신청 기간이다. 대학생 때는 인기 과목을 듣기 위해 과사무실 앞에서 친구들과 밤을 새기도 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는 모뎀-전화로 연결하던 인터넷 선-은 불통이 되기 십상이었다. 결국 믿을 것은 사람의 손 뿐이었다. 꼼꼼하게 수강신청서를 작성한 후, 친구들과 서로 검토해주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봐 소중하게 가방에 넣은 채로 과사무실 앞에서 밤새며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기도 했고,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이 제한되어서 과사무실 앞에서 밤을 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사이버 대학에 다니고 있기에, 수강인원에 제한이 없다. 교수님께서 촬영한 강의를 일정 기간 내에 듣고-이 기간을 넘기면 지각이나 결석 처리가 된다-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서 시험을 본다. 마감 날짜까지 과제를 내는 과목도 있다. 시험은 온라인. 오픈북 시험이다. 시험 범위를 꼼꼼하게 공부한 후, 책을 펴 놓고 시험에 임한다. 온라인 수업이라고 대충 틀어놓기만 하면 시험에서 낭패를 본다. 교수님들 중에는 교재에는 없는, 수업 시간에만 언급한 내용을 문제로 내시는 분도 계신다. 여기에서 평소에 얼마나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차(茶)에 대해서 배웠다. 차를 배우게 된 계기에 대해서 묻는다면, 솔직하게 할 말이 없다. 입학원서에 포함된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이 부분에서 한참을 고심했다. 그냥 ‘차(茶)를 배우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라고 써넣었다. 거짓말을 쓸 수도 없었지만, 지원 동기에 ‘그냥 배우고 싶은 것’보다 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계속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힘이 아닌가?
두 번째 입학은 아동영어학과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확고한 계기가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영어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식 영어 교육의 산증인이다. 선행학습이라는 것도 해보지 못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되기 직전에 알파벳을 처음 배웠다. 26개의 꼬부랑 글자들을 대소문자를 나눠 외운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입학을 하자마자, 알파벳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첫 시간부터 영어를 줄줄 읽어대는 친구들 앞에서 입만 뻐끔거리던 그 시간. 그 멍했던 느낌은 정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정말 많은 책을 아이에게 물을 주듯 읽어 주었다. 이렇게 무작위로 시작한 영어책 읽기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영어를 쓰고 살았는지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가 온 것이다.
지난 봄에 첫 학기를 듣고, 이번에 두 번째 학기가 되었다. 지난 학기에는 아동문학 번역에 대해 배운 것이 가장 기억난다. 번역하는 숙제도 재미있었다. 영어그림책과 관련된 스토리텔링 기법도 좋았다. 미처 모르던 동화책을 알게 된 것도, 내가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동화책 목록을 만들어 본 것도 유용했다. 이제 두 번째 수강 신청을 앞두고는 정말 설렌다.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까? 이번에는 얼마나 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을까? 나의 지식이 커지고, 그것을 선하게 쓰는 방법을 강구하는 시간이 즐겁다. 수강 신청은 일 년에 두 번. 나는 그 두 번의 시간에 지금을 살고, 미래를 살 나를 위한 계획을 짠다.
계획을 짜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