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3
어느 가을날, 오후 한 시. 전화벨이 울렸다.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역시나 전화기 너머 울음소리가 들렸다. “언니, 우리 세모가 갔어요.” A의 목소리에 울음보다 더 큰 슬픔이 넘실거렸다.
A는 요크셔테리어를 키웠다. 이름은 세모. A에게 세모는 가족 이상이었다. A가 마음을 크게 다쳤던 시절, A의 곁을 지킨 존재는 세모였다. 따로 지내던 A의 가족도, 가끔 만나던 나도, 세모처럼 A와 항상 같이할 수는 없었다. A는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모에게 전했다. 세모는 검고 예쁜 눈망울로 A를 바라보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 눈동자의 힘으로 A는 하루하루를 살아 냈단다.
어느 날, 15살이 된 세모가 곧 떠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A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동안 자기 삶을 사느라 세모를 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해졌다. A는 자기를 살게 한 세모가 떠나는 날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세모와 함께 있겠다고 결정했다. 때마침 A가 다니던 회사도 여러 가지 문제로 문을 닫았다. A는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A는 종종 전화로 근황을 전했다. 세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도 했고, 가끔은 자기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낑낑거리는 세모를 미워했다면서, 미어지는 가슴을 울음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세모를 지킬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말했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그깟 강아지 때문에 뭘하는 거냐?”라며 타박을 했단다. 풀이 죽은 A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A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A가 세모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능력도, 그 마음을 판단할 자격도 없었다. 그깟 강아지라는 말에 마음 아파하는 A의 마음을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삼 년이 흘러, 17살이 된 세모는 A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로 떠났다. 일상으로 복귀한 A는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떠나보내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또다시 잃고 싶지 않아서 A는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했다. 가끔 A의 프로필 사진은 어린 세모의 사진으로 바뀐다. 여전히 그립고 보고 싶다면서 A는 사진 속 세모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버려진 강아지들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A를 생각한다. 기사에서 다룬 각양각색의 이유 속에서 빠져 있는 한 가지. 사람의 책임을 곱씹는다. 반려견이란 어떤 존재이고, 반려인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그 답을 A에게서 찾는다.
자신이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졌던 아름다운 사람, A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