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l we dance?

겨울이야기2

by 홍유

율 브린너가 주연한 아주 오래된 영화가 있다. <왕과 나>. 영어 제목은 <Anna and King>이다. 남녀 주인공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주제곡 <Shall we dance?>가 흐른다. 지금도 아름다운 사랑과 춤으로 회자되는 <왕과 나>. 눈을 감으면 남녀 주인공이 춤추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Shall we dance?>의 가사를 20대가 끝날 무렵,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석사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일할 때였는데, 출근하는 버스에서 들었던 것 같다. 영어로 된 영화의 OST란, 후렴구만 흥얼거리다 말기 마련이다. 그날따라 갑자기, 가사를 찾아보고 싶었다. 초록창에 영화 제목을 치고,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읽다가 전체 가사를 발견했다.


노래 가사는 생각보다 서정적이었다. <춤 추시겠어요? 빛나는 음악의 구름 위로 함께 날아갈까요?: Shall we dance? On a bright cloud of music shall we fly?>로 시작되는 가사는 춤을 추는 남녀의 설렘을 정말 예쁘게 그려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가사는 끝부분의 한 줄이었다.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On the clear understanding that this kind of thing can happen>.


그 한 줄이 왜 그렇게 위안이 되었을까? 그 한 줄로 왜 그렇게 위로를 받았을까? 20대가 끝나가고 30대에 들어갈 무렵, 나는 진로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학부부터 계속 공부해왔던 전공은 막상 취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구원 생활을 하려고 석사를 마치고 연구소로 들어갔는데, 월급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일반 회사 직원보다도 적었다. 연구란 그저 열심히만 해야 하는 일이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오직 모니터만 보았다. 퇴근할 무렵에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연구 시설이라도 좋았으면 모를까, 하루에도 대여섯 번 부팅을 해야 겨우 돌아가는 컴퓨터를 썼다. 예산을 함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할 때까지 월급날이 언제인지 몰랐다. 월급은 항상 마음대로 들어왔다. 한 달은 월말에, 한 달은 그다음 달 초에. 한 달은 그다음 달 보름이 다 되어서. 늘 카드값을 걱정했다. 금액이 아니라, 제 날짜에 내지 못해서 연체되는 상황을.

연구소 생활은 힘들었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나를 붙잡고, 처음 보는 아저씨가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굳이 데려다 주겠단다. 있지도 않은 남자 친구가 데리러 왔다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성당 오빠에게 몇 번 회사 앞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회식을 하고 2차로 노래방을 갔더니, 대학 선배인 상사가 슬그머니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 자리에서 선배의 팔을 꺾고 “미쳤어요?”하고 말했다. 팀장님이 연구 결과가 좋다며 칭찬해주신 날은, 같은 실에 있던 다른 여직원들의 앞담화를 들어야 했다. “우리 팀장님은 쟤만 이뻐해.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거야?” 성당 오빠가 몇 번 남자 친구 노릇을 해 준 후, 폭언도 이어졌다. 노처녀 상사가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면, “너 어제 남자 친구랑 몇 번 자고 왔냐?”라고 물어봤다. 심지어 “잤으면 네 남친 나한테 넘겨라. 같이 재미 좀 보자.”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 물론 그 자리에서 곱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못나서 생긴 일인 줄만 알았다. 내가 만만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지금은 안다. 그저 그 사람들이 무능하고, 인격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임을.


꾸역꾸역 일 년을 버텼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연구소에서 쓰고 있던 논문을 후다닥 마감하고, 알아서 하시라는 마음으로 팀장님께 드렸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 반, 그저 여기를 나가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여기만 나가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았다. 박사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도, 분위기는 연구소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차에 타라는 배 나온 아저씨도, 남친을 넘기라는 무식한 여자도 없었으니까.

학위과정을 수료하고, 나는 결혼을 하고, 그동안 도전해보고 싶었던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하다가 대표님을 만났다. 책을 썼고 출판을 했다. 어린시절부터 늘 꾸던 꿈이었다. 공부를 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막막했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했기에 가능했다. 첫 책은 완판되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했기에 나는 아이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아이에게 내가 꼭 필요한 시기, 아이가 어린 시절, 코로나 시절을 나는 아이 옆에서 보냈다. 그것이 내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내 소망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어느 연구소에서 제법 높은 지위에 올라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꽤 많은 논문을 내지는 않았을까. 연구소에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과학자이다. 과학에 담긴 이야기들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공부하는 사람, 책을 쓰는 연구자이다. 프리랜서 집필자이고, 과학으로 동화를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이다. 비록 어릴 때 바라던, 실험 가운을 입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은 아닐지라도. 나는 여전히 내 꿈 위에서 춤추며 살고 있다. 바로 그 노래처럼.


On the clear understanding that this kind of thing can happen,

Shall we dance? Shall we dance?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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