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길게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0박 11일이라는 긴 여행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멀리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아이가 어려 섣불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익숙하고 친숙한 일본을 택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도쿄를 골랐습니다.
만 네 돌이 가까워오는 아이를 데리고 했던 일본 여행의 짧은 단상 몇 가지를 기록해 보려 합니다.
겨울 여행은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여름에 비해 겨울은 챙겨야 할 것이 훨씬 많습니다. 옷을 여러 벌 준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약도 더 많이 챙겨가야 합니다. 여행 초반에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 여행은 매우 피곤해질 테니까요.
캐리어는 이미 아이 짐으로 많이 채워져서 제 옷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패딩은 하나를 11일 내내 입었습니다. 백팩 속에는 아이 모자, 목도리, 장갑, 여분 옷, 비상약을 항상 담아서 다니고 다녔구요.
여행 첫날 비가 살짝 와서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캐리어 2개에 유모차, 거기에 우산까지 들고 호텔까지 간다고 상상해 보면... 이미 피곤하시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비가 많이 오지 않고 보슬비처럼 내려서 우산은 과감히 포기하고 스피드를 택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마음도 모른 채 아빠가 달리기 시작하니 유모차에서 소리를 지르더군요 ㅎㅎ.
둘째 날까지 비가 왔지만, 다행히 그 뒤로는 한없이 푸른 하늘이 이어졌습니다. 미세먼지가 없는 따뜻한 날씨는 참 오랜만이었네요.
여행하는 동안 이런 하늘과 함께 했습니다.
젤리와 자동차가 필요합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죠. 특히 일본은 기차의 나라다 보니, 기차를 타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사람 많은 기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겠죠. 어른들은 폰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아이는 할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젤리가 있었습니다. 찡찡대는 아이에게 젤리 한 봉지를 줬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젤리를 입에 한 개 넣더니 어찌나 행복해하던지요. 일본 젤리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한국에서는 젤리를 거의 안 먹었다 보니 입이 특별히 즐거웠나 봅니다.
대신 저와 하루에 젤리는 딱 1봉만 하기로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아, 젤리를 택한 건 가루 같은 것이 떨어지지 않아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걸 최소화하고, 혹시 바닥에 떨어뜨려도 금방 주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1개씩 장난감을 사줬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한 토미카를 사러 가거나, 아니면 뽑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뽑기 기계는 어찌나 많은지 아이가 그곳을 보지 않게 유모차 운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는 장난감에 정말 진심이었습니다. 그렇죠. 아이에게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여행이 더 행복해지겠죠. 대신 하루에 꼭 1개만 사기로 약속을 하고 또 했죠. 물론 이건 종종 실패했습니다... 찡찡대는 아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래야 했습니다.
기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아가 기차들
조금 아쉬웠던 건 제 몫의 기념품은 단 한 개도 사지 못했다는 겁니다. 여행이 길다 보니 언젠가 마음에 드는 걸 만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기념품 샵에 가면 아이를 챙기고 말리다 보니 여유롭게 구경할 기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명상의 시간과 맥주
아이는 저녁 9시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낮잠을 안 자기도 했고,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니 엄청 피곤했겠죠. 와이프는 폰을 가지고 조금 놀다가 저녁 10시쯤이면 잠이 들었구요.
하지만 저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많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고, 원래 잠이 많은 편이 아니기도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녁 10시에는 잠이 정말 안 오더라구요. 심지어 우리나라와 시차까지 없으니까요.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맥주를 선택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맥주로 유명한 나라에 왔으니 마셔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한 캔씩 도전을 해봤습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냥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 중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걸로 골랐습니다.
아이와 와이프가 자고 있는 불 꺼진 호텔 방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경을 보는 건 꽤나 행복했습니다. 폰이나 TV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유 있게 야경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한 번 이 달콤함을 맛보고 나니 계속 맥주를 마시고 싶어 지더군요. 맥주가 좋은 건지, 그 시간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스몰월드라는 곳에 전시된 작품입니다. 이런 곳에 살아보는 꿈도 가져봤어요.
맛집은 사치입니다.
아이와 여행을 하다 보니 음식 제한이 정말 많습니다. 아이가 먹을 수 것이 있는 식당을 찾아야만 하니까요. 돈가스 류의 음식은 정말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스시는 마지막 날에 겨우 한 번 먹었네요. 아이는 아직 스시를 먹지 못하니까요. 그나마 키즈 메뉴가 있는 스시집을 찾았거든요.
젤리를 포함한 군것질로 인해 아이는 평소보다 식사량이 적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는 마인드로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만큼만 줬습니다. 나름 장기간의 여행이라 와이프는 걱정했지만, 아이에게 여행은 행복한 기억이 가득해야지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뭐 결과적으로 아이의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은데... 계란찜만 먹었답니다.
아이의 새로운 식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면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던 아이는 라면을 맛보더니 세상에 이런 맛이 있냐는 표정과 함께 폭풍 흡입을 했습니다.
일본에는 라면 박물관도 있어서 자신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더라구요. 라면에 자기만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라면 안에 원하는 부재료들을 넣어 곱게 포장도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 라면을 호텔까지 가져와서 먹었습니다.
아, 세 입쯤 먹었을 때 응가 신호가 와서 저와 아이는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 시간 동안 불어버릴 라면을 와이프가 다 먹긴 했지만요.
아이가 좋아하는 걸 가득 담았습니다.
아이에게 정말 친절한 나라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친절과 배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늘 저희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해 줬습니다. 정말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도, 저희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있는 부부도 저희에게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소하고 당연한 친절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소중하고 하루종일 기분 좋아지는 친절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닫히는 문을 잡아줘도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듣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냥 목례만 해줘도 둘 다 흐뭇하게 끝날 수 있을 텐데... 당연하다는 듯이 쌩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죠. 그럴 때마다 친절을 베푸는 것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마워해주고 웃으며 바라바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다시 정이 가득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라면 입출국 수속이 빨라집니다.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면 공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입장하는 게이트가 따로 있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방학이면 공항은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겨울방학의 한복판, 토요일 오전이었는데도 말이죠.
일본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더 빠르고, 더 친절하게 도와줬습니다. 동작이 느려도, 아이가 조금 짜증을 내더라도 감사하게도 대부분 이해해 주십니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분들은 미리부터 겁먹지 않으셔도 된다는 걸 꼭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