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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쌀쌀한 날.

식탁엔 명란찌개

by 사브리나 Mar 10. 2025


"영원한 봄의 도시" 달랏에 봄입니다.

아침 점심 나절은 온통 맑고 밝고 푸릇푸릇합니다.

꽃들이 만발해서 보이는 색이 화려합니다.

해가지면 쌀쌀한 바람이 찾아옵니다.

북적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갑니다.

야시장 인근은 사람들로 복잡합니다. 깜깜하고 조용한 달랏의 밤에 유일하게 야시장만 잠들지 않은 생기를 가득 채웁니다.

달랏에 원주민들은 밤시간 야시장 근처에 가지 않아요. 그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곳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기운이 빠지거든요.


일교차가 어찌나 심한지 모릅니다.

강렬한 고산지대의 햇빛이 종일 사람들을 따갑게 했지만

밤이 되면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달랏은 밤이 시작되면 제법 쌀쌀한 날씨를 선보입니다.

고산지대 특유의 이랬다 저랬다 날씨가 이어지는 날은 코끝이 찡하게 추워집니다.

봄의 도시라 그런지 일교차도 딱 봄과 같습니다.

해가지기가 무섭게 환타는 제 옆에 착 달라붙습니다.

환타는 6시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넘어가면 제 무릎에 머리를 묻고 밥을 달라고 애교를 선보입니다.

제가 바쁜 것 같으면 공갈 껌을 물고 밥그릇 앞으로 가서 아작아작 씹으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환타는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산책하러 갑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제 차례입니다.

쌀쌀한 바람을 맞고 조용한 산책을 끝내고 나면 몸도 마음도 허기가 집니다.

보상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허기진 몸과 마음에 쌀쌀한 바람이라니 보상은 명란찌개

저는 명란찌개를 끓입니다. 

찌개 한 그릇이면 김치와 함께 밥 한 그릇을 뚝딱하게 되는 마법의 찌개입니다. 냉동실 안에 고이 잠들어 있는 명란젓은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잔뜩 쟁여오는 저의 필수 식재료입니다. 염분이 적고 통통한 명란을 두 개씩 짝지어 소분해 얼려서 가져옵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기름기가 적당한 돼지고기입니다. 급할 때는 대패 삼겹살을 이용하지만, 보통은 비계와 살코기가 반반으로 적당한 도톰한 삼겹살을 씁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파채입니다. 다른 야채들도 들어가지만, 이 세 가지 주인공이 없다면 그날은 명란찌개를 먹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부가 있다면 조금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냄비 바닥에 명란젓 한쌍을 깔아줍니다. 저염 명란젓도 좋고, 양념이 되어있어도 좋습니다. 구하기 어려울 땐 통통한 명란젓 두 개 분량의 명란 파지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통통통 썰어놓은 애호박과 무를 얹어줍니다. 왜인지, 명란찌개에는 양파가 어울리지 않아서 보통 무와 애호박을 사용합니다. 

그 위에 잘 썰어놓은 돼지고기 삼겹살을 켜켜이 올리고, 마지막으로 파채를 크게 두 주먹 올려줍니다. 달랏에서는 파 채를 구하기가 힘들어 대파를 손가락 길이로 세로로 썰어 이용합니다. 큰 대파 한 대 에서 두 대 정도 사용하면 적당합니다. 

칼칼한 고춧가루 한 스푼 듬뿍 넣어주고, 적 당량의 물을 넣은 뒤 바글바글 끓여줍니다. 좀 더 칼칼한 맛이 당긴다면 청양고추도 통통통 썰어 넣어 줍니다. 감칠맛을 위한 다시다를 조금만 넣어주고 간은 느억맘 소 스로 대신합니다. 그렇게 한번 바르르 끓어오르면 명란찌개가 완성됩니다.

여기에 두부도 올려주면 더욱 풍성한 찌개가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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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면 어때? 김치만 있어도 충분히 풍족한 식사가 되는 명란찌개 최고!!


식탁에 매트를 깔고 김치와 갓 지은 밥을 가지런히 놓아둡니다. 찌개를 휘휘 저어 아래쪽에 있는 명란을 가위로 먹기 좋게 나누고, 작은 알들이 국물과 살짝 섞이게 합니다. 

적당량에 돼지고기와 야채들을 소복이 담아주고 국물도 자작하게 담습니다. 좋아하는 방송이나 노래를 틀고 냄새를 맡고 옆에서 기웃대는 환타는 애써 무시하면서 식사를 시작합니다.

애교를 선보이며 간식을 바라는 귀여운 환타 애교를 선보이며 간식을 바라는 귀여운 환타 

국물을 한 스푼 맛보고 밥을 한입 입에 넣습니다. 그리고 명란 한 조각, 돼지고기와 야채를 숟가락에 잔뜩 얹어서 한입 가득 씹으면, 행복합니다. 

이렇게 맛있다니 저는 명란찌개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잘 끓이는 명란찌개 전문 요리사입니다.

몇 개 남지 않은 명란젓을 보니 곧 한국에 방문해야 할 시간인가 봅니다. 달랏에서 먹어서 더 특 별한 찌개입니다. 마음이 쓸쓸한 날 허기가 지면, 제 식탁에는 명란찌개가 자리합니다. 

소박하게 준비해도 늘 푸짐한 맛을 보여주는 명란찌개가 저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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