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향한 열망이 너에게 데려다준 것을
최근 이동호 작가의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가 출간되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리고 일본 작가 우치쟈와 준코의 <그녀는 왜 돼지 세 마리를 키워서 고기로 먹었나>가 생각났다. 우치쟈와의 작품은 2년 전 내가 농업대학 1학년일 때 접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내야지 앙큼한 다짐을 하게 했다. 그리고 2년 뒤인 오늘,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보자 흙 아래 덮어둔 다짐이 불끈 솟아났다.
유년시절 나의 어머니는 밥 차려줄 시간은 없어도 각종 전집은 꼭 사주셨다. 그 덕택에 책을 많이 읽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책 한 권을 읽어야만 책가방을 맬 수 있었다. 그 어릴 적에도 '우리 어머니 참 혹독하시네...' 했지만 책 읽기가 싫지 않았다. 하교 후 동생 밥 챙겨 먹이고 해가 뉘엿할 즈음, 책장 넘기는 여유를 일찍이 알았더랬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까지도 책 읽기는 나의 안식이고 도피이자 꿈이었다. 어쩌면 입시에서 다 떨어지고 하나 붙었던 모 대학교의 국문학과 학생이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가서는 글을 읽고 읽다 어느새 쓰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커져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유능하고 학벌 좋은 사람들의 글은 넘쳐났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단지 글이 쓰고 싶었을 뿐인데 이것도 저것도 되어보고 싶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을 앞둔 24살에 결단해야만 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흙이 좋아, 도시가 싫어, 초록이 좋아, 매연이 싫어. 동물이 참 좋다. 떠오르는 말들을 나열해 보았다. “농부가 되어야지!” 농부가 되면 일단 먹고 살 걱정은 없을 테고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글감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주목받지 못한 낮은 곳의 생명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농부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25살에 농업대학에 지원했고 남들은 직장인이 되어갈 때 다시 새내기가 되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를 입학시켜줄지 꿈에도 몰랐다. 전공은 돼지로 정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먹는다는 것’은 나의 오랜 화두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리하지만 열악한 처우를 받는 돼지에게 마음이 갔다. 공부할수록 꼭 나와 닮은 듯했다. 그렇게 돼지가 보고 싶어서, 돼지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아무것도 모른 채 서울을 처음 떠났다.
덕분에 작년 한 해는 돼지 농장에서 실습을 했다. 졸업 후에 돼지를 키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돼지와 뒹굴었다. 돼지가 질펀한 엉덩이로 옷에 똥을 묻혀도, 똥물에 에어팟 한쪽이 떨어져도 좋았다. 공기반 파리반인 곳에서 하루종일 돼지랑 놀았다. 그때의 경험이 적당히 숙성되어 가장 맛있을 때가 왔다. 이제는 글을 쓰자.
돼지야 너는 아니. 글쓰기를 향한 열망이 너에게 데려다준 것을. 돼지 너는 모를지라도 나는 너에 대해 써내려 갈 거야. 오랜 시간 방황하던 나의 펜촉이 너를 톡톡톡 두드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