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해 궁금한 걸 질문하랬더니...
꿈을 주제로 기획 전시를 진행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꿈에 대한 질문”을 해달라고 설문 링크를 열었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듣고 그것을 답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풀어볼까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꿈에 대하여 무엇을 궁금해할까? 우리 아이들은 꿈에 대해 어떤 희망을 품고 있을까 궁금했다. 300여개의 질문이 실명과 익명으로 고루 들어왔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질문을 남겨주었다는 것이 벅차서 설문 응답지를 뿌듯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모든 질문들을 읽고 나서 나는.... 즉각적으로 슬퍼졌다.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었다. 질문들이 아팠다. 뾰족뾰족한 질문들. 예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많이 아프고 힘들다는 걸 알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었다.
- 꿈이 있어야만 행복한가요?
-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 내 꿈을 현실 속 나에게 적용시켜 잘 될거라 확신하는 사람들은 몇 %일까요?
- 꿈을 찾는 것보다 하고 싶을 걸 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
꿈이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어떤 확신처럼 바뀌어서 ”지금도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회의적 태도로 옮아가고 있었다. 과연 정말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이야기까지 한 명이 던진 질문이 아니고 저렇게 묻는 아이들이 많았다. 급기야....꿈을 찾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낫지 않냐니....익명으로 질문한 저 학생을 찾아내어 네가 생각하는 꿈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질문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해서 너무 불안해요
- 꿈이 없어서 무기력할 땐 어떻게 할까요?
- 고1인데 아직 꿈을 못 정했고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 꿈을 아직 명확히 정하지 못했는데 찾아보기엔 늦은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꿈을 못 정하여 불안하고 무기력한 아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자기 자신을 한심하다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 기저엔 ”늦었다“는 인식이 숨어있었다. 꿈을 찾기에 늦은 나이 17세.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문장인가. 누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궁지로 몰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게 더 당연할 나이에 아이들은 꿈조차 못 정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며 아파하고 있었다.
- 꿈을 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이때 선생님들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꿈이 아닌데 이것 말곤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죠?
- 지금 꿈꾸는 꿈을 나중에도 원하고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 진로가 확실하지 않지만 그나마 관심 있는 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가서 진로가 바뀌면 지금까지 준비한 게 의미 없어지는 것 같아서요. 진로는 확실하게 정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좋겠죠?
- 진로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는 하는데 진로가 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만약 진로를 잘못 선택하는 경우에는 결국 진로를 행복의 방향에 맞춰야 하나요?
- 생기부 활동을 희망하던 진로에 맞춰서 했지만 진로가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뭐라도 꿈을 정한 아이들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갖게 된 꿈이, 자신의 것인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자신이 그걸 정말로 좋아하고 원하긴 하는지, 그걸 끝까지 좋아할 자신이 없어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럴 나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확신이 없는 자신의 꿈을 생활 기록부에 활자로 옮겨 두었기에 – 그 꿈에 맞춰 보낸 자신의 고교생활이 진정한 꿈을 찾았을 때 다시 자신의 발목을 잡으면 어떻해야 하는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불안한 우리 아이들 괜찮은 걸까.
- 꿈을 이뤘을 때 현실적으로 돈을 못 벌 것 같으면 다른 꿈을 찾아야 하나요?
-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데 하고 싶은 걸 하는 대신 돈을 잘 못 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 꿈이 너무 어려워요. 하고 싶은 것을 하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남들에게 인정도 받아야 해요. 사실 마지막은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곳은 평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 아닌가요? 공사장의 인부, 건물의 청소부 분들은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분들이시지만 몸을 쓰고 일을 한단 이유로 경시받고 계세요. 그 분들이 본인들의 직업을 자랑스레 여긴다면 주변에선 자기 합리화라고 말하죠. 이런 세상에서 꿈을 좇는 게 의미가 있나요? 의미가 있다면 어째서 의미가 있을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부모님의 자랑이 되지 못하고, 어딜 가도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것이 되더라도 좇아도 되나요?
꿈이 뭐 대수냐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돈 아닌가 하는 질문도 정말 많았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시대. 그 어떤 가치들을 압도하는 경제적 가치. 물질만능주의의 극단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자신 안의 목소리보다도, 사회공헌적인 가치보다도, 돈이 우선인데 그 이외의 것이 도대체 어째서 중요한지 묻고 있었다. 차라리 솔직한 이 질문들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픈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을까, 이 세계 때문이었을까.
- 좋아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지금 와서 진로를 탐색하기보다는 학업부터 챙기는 게 좋을까요?
- 공부 못해도 살 수 있나요?
- 공부하면서 행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공부 안하면 인생 망하나요
- 입시가 끝나면 행복해지나요?
꿈이 뭔지 모르겠어서 일단 공부를 택한 아이들은 행복할까. 공부하면서 행복한 방법을 묻는 아이들. 그리고 공부를 못해도 살 수 있는지 묻는 아이들. 학교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아이들을 성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기관이다. 낮은 등급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등식을, 그러나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한다. 공부 안 하면 인생 망하는지, 공부 못해도 살 수 있는지가 궁금한 아이들은 현재진행형으로 불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입시가 끝나면 행복이 오는지를 묻고 있다. 가장 해맑게 행복해야 할 학창 시절에 말이다.
너희들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시를 풀어갈게~하며 설문을 열었던 건데, 도무지 어떤 답을 어디서부터 해주어야 하는지 막막했다. 질문 곳곳에 희망이 숨어있을 것을 기대했었는데, 아픈 초상이 아로새겨진 질문들에 마음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