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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Apr 08. 2021

널 만나려고

피말리는 피검사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식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은 매번 내 안의 걱정과 이성이 맞붙어 싸우는 느낌이다. 이성은 집안일도 좀 해야겠고, 운동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는 게 보여서 바쁘다. 하지만 걱정은 너무 움직여서 착상이 안되면? 운동하느라 힘들어서 착상이 안되면 어쩌지?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착상이 안되면 어떻게 해? 샤워를 너무 뜨거운 물로 해서 배아가 잘못되면 어떻게? 운전하다가 덜커덩거려서 잘못되면? 이 글을 읽으며 '뭘 저런 것 까지 걱정을 해?'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실제 난임 카페에서는 이식 후에 힘주는 게 걱정되어 볼일도 편히 못 본다는 사람도 많다. 진짜 그만큼 간절하다. 

 피검사를 기다리는 10일 동안 최대한 최면을 건다. 이미 잘 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임신을 알고도 한동안 짓지 못한다는 태명도 이미 배아 상태부터 지어둔다. 매일 부르며 꼬신다. "잘해줄게. 가지 말고 집 잘 지어서 나랑 같이 있자"하고 꼬셔본다. 진짜 자존심도 없다. 눈에도 안 보이는 세포를 꼬시고 있다. 정말... 눈물 난다.

 어느 날은 갑자기 신게 먹고 싶다. 그럼 '임신인가?' 하면서 구해다 먹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닭발도 먹고 싶다. 그럼 '진짜 임신인가?'하고 먹는다. 또 어떤 날엔 잘 안 먹던 상큼한 샐러드가 먹고 싶다. 이쯤 되면 "진짜 임신인가 봐..." 한다. 이러면서 살이 찐다. 먹고 주사로 맞는 호르몬 약들 때문에도 찌는데... 이러면서 더 찐다. 그러면 나오는 배를 보며 '벌써?' 싶다. 


이렇게 피 말리는 10일이 지나면 아침 일찍 병원에 간다. 거의 1등이다. 피를 뽑고 나면 이제 하루 종일 전화기만 손에 쥐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임테기에 손을 대서 결과를 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임테기를 해도 문제다. 두줄이 나오면 "이게 진짜일까?"하고 걱정하고 한 줄이 나오거나 흐릿한 두줄이 나오면 "아니야... 아직 몰라. 피검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지..." 한다. 그럼 결국 피를 뽑아두고 전화기만 들고 있다. 

 이번엔 나는 임테기를 하지 않았다. 지레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면 약을 처방받아야 하기에 병원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실은 이번에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결과가 어떻게 되던 더 이상은 하지 말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호르몬을 계속 맞는 것도 괜히 찜찜했고 시술을 하며 살이 찐 탓에 여기저기 몸이 나빠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안 하겠다 협박 같은 결심을 하면 하나님이 미안해서 주시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도 사실 조금 있었다.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선생님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보다 더 안타까운 얼굴이셨다. "아... 이번엔 잘 안된 것 같습니다." 결국 또 이 말을 듣게 되었다. 슬프거나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결심은 뒤로하고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생님, 바로 다시도 가능하나요? 쉬어야 하나요?" 생각과 달리 질문이 튀어나왔다. 두 달은 쉬었다 하자 하셨고 남편은 나를 물끄럼이 보더니 "남편이 해야 할 건 없나요?" 했다. 결국 우리 둘 다 보충해야 할 영양제와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받고 나왔다.


 "나... 한 번만 더 해볼게. 국가지원도 한번 더 남았고, 병원 옮기고 처음 한 거니까. 한 번만 더 해볼게."남편에게 괜스레 눈치가 보여 말을 꺼냈다.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아이보다 내 와이프가 소중한데, 소중한 사람이 하고 싶다면 말릴 순 없지."라고 이야기를 해 줬다. 이런 다정한 남편이라니... 남편복이 너무 많아 아이가 빨리 안 오나? 괜스레 이상한 생각이 또 들었다. 

 너무 기대해서 또 너무 실망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이전에 실망했을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시원 섭섭함이라고 할까? 나머지 기회를 위해 최선을 다 해봐야지. 근데... 진짜 잘해줄게. 왜 자꾸 그냥 가니?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엄마에 스윗한 아빠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야. 이제 한 번의 기회가 남았어. 매진 임박이라고 혹시 들어봤니? 우리 제발 빨리 건강하게 잘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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