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tuti Nov 04. 2021

너희들의 우정을 응원해!

지난 화요일은 미국 선거일이라 학교가 쉬는 날이었기에 오랜만에 둘째의 친구 둘을 집에 불러 Play date을 했다. 일주일 전부터 아이 친구 부모들과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고 큰 아이에게도 동생 친구들과 집에서 놀다가 점심을  먹고 근처 실내 암벽등반에 가서 암벽을 탈 건데 같이 갈 건지 의사를 물어봤다.  큰 아이도 좋다기에 그렇게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전날 저녁, 초딩때 절친인 V 와 Y 와 전화통화를 하더니 자신도 자기 친구들과 플레이데이를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할 건지 물어봤더니 오후 4에 공원에서 만나겠단다. 요즘 날씨도 춥고 해도 일찍 지는데 공원이라니.  거기다가 큰 아이 바이올린 레슨이 4시 반에 시작하기에 아들 친구 부모들에게도 3시엔 아이들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매번 학교가 끝나면 내가 차로 아이를 바이올린 선생님 댁에 데려다주고 집에 데리고 오니 중학생인데도 몇 시에 자신의 레슨이 시작하는지 끝나는지도 모르는가 보다.

  

내일은 엄마가 동생 친구들을 불러 11시부터 3시까지 아이들을 봐야 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너를 다른 집에 데려다 줄 수가 없으니 만약 레슨 전에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를 만날 경우 친구들 부모에게 픽업을 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일러줬다. 한참을 친구들과 통화하더니 Y는 오후 4시까지 일이 있어 그 이후에나 만날 수 있다며 저녁 6시에 공원에서 만나겠단다. 왜 만나는 장소가 굳이 공원이냐고 물었더니 나머지 두 집 다 부모들이 자기네 집에선 안된다고 그랬단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갑자기 밤 9시가 다 되어서 딸이 다음날 저녁 친구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온다는데 그래라 할 부모가 몇 명이나 있겠나? 큰 아인 늦더라도 친구들과 꼭 만나고 싶다고 그러고 그래 그럼 지금 아빠도 안 계시니 저녁때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부르라고 허락해 줬다. 그리고 V는 하루 종일 스케줄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 동생 친구들이 올 때쯤 와서 같이 놀다 점심 먹고 암벽등반도 같이 갔다 해어졌다 다시 만나기로 합의를 봤다.


남자아이들은 모여봤자 게임기를 가지고 좀 놀다 두서없이 이것저것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지하실 방에서 농구공을 좀 던지고, 밖에 나가 스쿠터와 자전거를 탄다.  아무리 친구들이 오면 뭐 하고 놀지 계획을 짜 봐라 그래도 모르겠다고만 하고 또 아이들도 우리 집에 오더라도 이거 하자고 할 때 게임기를 제외하곤 선뜻 동의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 없다. 우리 집에 있는 게임은 당연히 우리 아이가 늘 하던 게임이고 친구들은 처음 해 보는 게임이니 친구랑 같이 하면 우리 아이만 잘하니 친구들은 재미있을 리가 없다. 우리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가더라도 그건 마찬가지 일 테다.  친구 중 한 명은 이미 핸드폰이 있는 아이라 핸드폰을 보느라 손에서 폰을 놓지를 못한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느라 점심을 먹을 때도 놀이를 할 때도 실제 놀이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계속 것 돌다 자신이 보던 동영상을 보고 큭큭 거리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는 노래를 따라 하거나 말투를 따라 한다. 때문에 같이 나누던 대화도 종종 끊기고 어떤 놀이도 집중이 안된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말아 달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이건 이미 큰 아이의 파자마 파티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미쳐 생각지 못한 내 잘못이다.


아무래도 여자 아이들은 손톱을 바르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재밌게 한다.


초등학교 때 큰 딸과 삼총사였던 Y와 V는 우리 딸만 빼고 같은 학교를 갔다. 어깨 너머로 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데 요즘  그 둘 사이가 멀어졌나 보다. 이유인즉슨 둘이 아무것도 같은 수업을 듣는 게 없다는 거다. Y는 V에게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칠 때 인사를 해도 V 가 못 본 척하며 그냥 지나간 것이 여러 번이라 이젠 인사도 안 한다고 그러고 V는 자신이 인사할 땐 Y가 안 받아줬다며 서로 우리 딸에게 불만을 토로했단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만날 일이 거의 없었고 올해 처음 같이 학교를 다니게 돼서 둘 다 엄청 신나 하며 학기가 시작하던 8월 초 마지막 플레이데이에서 학교에서 보자며 그렇게 좋아들 했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런 관계가 될 줄이야.

 

내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래도 친구는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낼수록 친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 친구가 같은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은 당연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줘야 한다고 조언을 해 줬다.

 

나는 어릴 적 뺑뺑이로 중학교를 갔기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다. 더군다나 같은 학교에 배정된 친구들조차 다들 다른 반으로  배정돼서 외롭게 첫 학기를 시작했어야 했다. 가끔 어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또 점심시간마다 도시락까지 들고 옆반 예전 친구를 찾아가 원정 식사를 하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원정 식사는 줄어들었고 그 기간이 길면 긴 아이들일수록 자신의 교실에선 다른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을 익히 봐왔다.

 

다행히도 한국은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니니 초등학교 친구들이 중학생이 되어 헤어진데도 바로 아파트 앞동에, 또는 골목의 저편에 친구 집이니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부모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이 친구 집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 놀 수 있었는데 미국이란 이곳은 친구 집을 가려고 해도 적어도 차를 타고 15분은 운전해서 가야 되니 부모님 스케줄까지 맞춰 친구를 사궈야 하니 참 피곤한 노릇이다. 그런 걸 보면 이젠 스마트폰이 있어 화상통화로 언제든지 하교 후 전화통화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딸은 V에게 저녁때 Y를 만나면 꼭 다시 맘에 품었던 힘들었던 걸 내려놓고 다시 이야기하고 학교 가서도 쉬는 시간에 같이 놀고 인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너네땜에 내가 힘들어~ 하면서.


아이들을 다 보냈다가 다시 저녁이 돼서 딸아이들이 우리 집에 다시 모였다. 레슨 갔다 돌아오는 길이 막혀 어쩌다 우리 집에 두 친구가 먼저 와 있었다. 둘은 한동안 티브이를 보며 대면대면 말이 없다. 티브이 속 만화 주인공들만이 냉랭한 적막을 가로지른다.

 

분위기를 전환해 볼 겸 과일을 깎아 내어 주며 요즘 학교는 어떤지 각각 어떤 수업을 듣는지 질문을 해 본다. 달콤하고 상큼한 게 입안에 들어가면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한창 잘 먹을 때인 아이들은 저녁도 먹고 왔다는데도 과일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응답하라’에서도 보면 엄마들이 이런저런 이야길 나눌 땐 나물도 다듬고, 뭔가 손에 들고 소일거리를 하면서 수다를 떤다. 마치 내가 꼭 이야기하자고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일하는데 손은 바쁘지만 입은 쉬고 있으니 이야기나 하고 있는 거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이야기할 시간을 주기 위해 휴지 심과, 땅콩버터, 새 모이를 가지고 나와 bird feeder를 만들어 보게 했다.  여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금세 하나를 뚝딱 만든다. 만들다가 다시 예전처럼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  쫑알쫑알 떠들고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자기가 만든 걸 집에 가지고 갈 수 있게 한쪽에 비닐봉지로 한 개씩 묶어 포장해 주고 이젠 미리 만들어 두었던 1차 발효 한 빵 반죽을 들고 나왔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 찰흙놀이는 언제 마지막에 해 봤을까? 슬라임이 한참 유행이었던 터라 슬라임을 가지고는 놀아 봤지만 빵 반죽의 감촉을 느낀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슬라임 보다 훨씬 촉감이 좋단다. 달콤한 이스트 향에 벌써 한입을 베어 물고 싶어 진다나. 부드럽지만 탱글탱글한 반죽을 한참을 조몰락 거리며 마음도 녹아내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다시 3개월 전 그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반에 어떤 애는 소셜 스킬이 너무 좋아서 늘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자기는 어떻게 친구를 사궈야 될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구누구는 벌써 남자 친구를 사궜는데 자기는 절대 어른이 될 때까진 남자 친구는 안 사귈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딸이 만든 BIRD FEEDER 와 누나 친구들 옆에서 아들이 만든 통밀 브리오슈. 아들은 자신의 빵을 마인크레프트 빵이라 이름지었다.


빵이 오븐에서 익어가는 동안 티브이를 함께 보는데 2시간 전 그때  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집에 가는 길에 두 아이의 손에 자신이 만든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쥐어주었다. 부디 내일 학교에서 마주치면 아침에 먹은 손수 만든 달콤한 브리오슈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마당에 새가 와서 모이를 먹을 때마다 그들이 함께 했던 이 시간을 기억하길.


어린 친구들의 우정을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갔다 오는 길에 소고기 다시다 좀 부탁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