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고자질
엄마. 엄마랑 떨어져 산 지도 15년이 더 되었다. 얼마 뒤면 같이 산 날 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길어지네. 가끔씩 하는 전화에 늘 엄마는 다 괜찮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오늘은 방과 후에 졸업한 제자 녀석이 찾아왔어. 직원회의가 있어서 한참을 교무실에 잡혀있어 꽤나 늦은 시간이었어. 퇴근시간이 다 돼서야 교실로 왔는 데 익숙한 아이가 앉아있었어. 연락도 없이 얼마나 기다린 걸까. 방금 왔다는 아이의 말에 그냥 그렇구나 넘어갔어.
검정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꺼냈어. 과자 몇 개, 사탕 몇 개, 빨대 커피 하나. 오늘 개교기념일이라 학교를 안 가서 나를 찾아왔데. 고마운 일이야. 일 년 중에 하루 있는 특별히 쉬는 날에 나를 생각해주다니 말이지. 보통은 찾아와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는 데 이쁘게도 내 간식까지 사 오고.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지만 일 년을 함께한 담임을 어찌 속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 얼굴은 죽상인데 표정만 밝아. 그렇게 웃는 얼굴 속으로 고민이 한가득인 게 보였어.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고 궁금했지만 딱히 묻지 않았어. 아이가 말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이야기를 했을 테지. 그냥 그렇게 별 쓸모없는 이야기만 노닥거렸어.
아이는 학원 시간이 다 되어 가야 한다고 했어. 평소에 아이가 좋아하던 떡볶이 사줄까 라는 말에 그냥 얼굴 보러 왔다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고 웃으며 교실을 나갔어. 한동안 아이의 모습이 교실에 남아 있었어. 귀한 시간에 나를 찾아준 고마움과 무거운 아이 표정 속에 비친 걱정스러움으로 나만 아이를 돌려보내지 못했어.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님 무슨 말이 듣고 싶었을까. 내가 먼저 캐물어 줬어야 했을까. 이대로 아이를 보내도 괜찮은 걸까. 마음은 너무 안쓰럽지만 믿어보려고. 또 힘들면 다시 찾아오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처음 봤을 때 보다 많이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갔다는 거야. 그럼 됐지 뭐.
엄마. 나도 사실 가끔씩 일이 잘 안되고 힘들 때 엄마랑 전화통화를 하면 다 괜찮다 다 잘된다고 할 때가 있어. 사실은 엉망진창인데 말이야. 그래도 엄마 목소리 들으면 다 괜찮아 질 것 같고 다 잘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기새
가을 하늘을 거닐다 돌아온 둥지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던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기새 한 마리
뭔가에 호되게 당한 얼굴을 하고선
그 시절 그 모습으로 삐약거리다
이내 나를 발견하곤 내 품속으로 파고든다
잠시 온기를 나누던 아기새는
무엇이 그토록 이 어린것을 힘들게 하였는지
이제는 또 어디로 향하려는 지 한마디 말도 없이
날개깃에 묻은 흙만 털어내고는 다시 둥지를 떠난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아기새의 온기를 추억하며
떠나간 빈자리를 보듬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