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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Mar 01.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 주취자 소동

열아홉 번째 고자질

엄마. 나보고 주 5일제라고 토요일 쉰다고 좋겠다고 했지. 맞아. 공식적으로는 토요일은 휴무야. 근데 학교 나갈 때도 있어. 아이들이 나올 때는 말이야. 최근 자주 나갔는 데 마침 그날은 집에 있었어. 


그렇게 주말을 알차게 보내고 돌아온 월요일의 학교는 난리가 났어. 오전부터 부장회의가 열렸지. 회의실 책상 위에는 우리 학교의 이름이 딱하니 적힌 지역뉴스 기사가 프린터 되어있었어. 아니 보통 00시 모초등학교라고 하지 않나. 유명한 언론사는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어. 기사의 내용은 대략이래. 


초등학교 안전관리 구멍... 주취자 난동에 교사, 학생 교실서 공포에 떨어

학생들 수업받는 교실 복도에서 흡연하고, 노래 부른 주취자

학교 지킴이는 수업 종료 전 퇴근... 여교사, 학생들만 남은 탓에 제지 

이런 기사 자체를 비난하려거나 사건은 은폐하려는 건 절대 아니야. 오히려 이런 기사로 안전시스템이 조금 더 촘촘하게 바꾸려는 시선들이 모이길 바랬어. 근데 기사를 보니까 너무 속상했어. 기자님이 학교 관계자에게 하나 물어보지도 않았어. 물론 현장에 있지도 않았어. 당시 있었던 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학부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쓴 거야. 나중에 따로 연락해서 내용이 조금 수정되긴 했지만. 엄마니까 우리 학교의 이야기도 들어봐 줄래.


기사의 이야기는 이래. 

지난 토요일 술 먹은 사람이 학교로 칩임 해 수업받고 있던 교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렀다. 이 주취자는 당시 유일한 남자인 꿈나무지킴이가 12시에 퇴근해서 아무 제재 없이 침입할 수 있었다. 아이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가 와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교사와 학생은 교실에서 떨었다. 이번 사건이 12시 5분에 일어났기에 근무시간이 5분만 조절돼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로 한 학부모는 "학교에 남자가 한 명만 있었어도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됐다” 였어. 


엄마 그 학교에 남자가 나인가 봐.

알지? 우리 학교에 남교사 2명밖에 없는 거.


이거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선생님의 이야기야. 

아이들 수업은 12시에 마치는 데 아이들과 정리를 하다 조금 늦었나 봐.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술 먹은 사람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데. 재빨리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데. 아이들은 2학년이었어. 과연 그 교실에 선생님이 없는 게 나았을까. 교감선생님께 빨리 연락을 드리고 교실 문을 잠그고 차분하게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데. 경찰에 신고를 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학교 가까이 있던 학부모가 오셨고 주취자가 나가게 되었데. 


그리고 학교의 이야기야. 아이들이 9시에서 12시 사이에  수업을 받아. 꿈나무 지킴이들은 9시에 12시까지 근무야. 왜냐면 근로기준법이 바뀌어서 일주일에 17시간 미만 하루에 4시간 미만으로 근무를 하실 수밖에 없어. 시간표를 짜도 그렇게 밖에 안 나와. 그러니까 ‘수업 종료 전 퇴근’이라는 말이 어찌 보면 오해를 부르기 좋지. 뭐 문맥상 틀린 말은 아니야. ‘학생 하교 전 퇴근’이라고 하면 좀 나으려나.

그래도 아이들 등굣길 봐주신다고 일찍 나와서 아이들 봐주셔. 대부분이 공직에 계셨던 분이라 아이들도 엄청 이뻐해 주셔. 그리고 현장에 유일한 교사였던 어른이 밖으로 나가 위험에 빠지기보다는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옆에서 안심시킨 것은 잘한 대처였다는 입장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야. 물론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 주취자로부터 아이들을 구한 영웅이 될 수도 있었겠고, 과잉대응이나 학교에서 남교사 폭행사건으로 기사가 날 수도 있었겠다. 기사의 초점이 남자는 학교를 지키는 호의무사로 , 여자는 약하고 겁 많은 사람으로, 꿈나무 지킴이는 힘없고 나태한 사람으로 그려졌다는 게 화가 나. 


기사의 내용처럼 술 취한 사람이 아니고 칼 든 사람이었다면 정말이지 큰 일 날뻔했어. 정말 학교 안전대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해. 세상에 알려줘서 고마워. 비단 우리 학교만의 일은 아닐 테니까. 근데 내가 속상한 것은 선생님은 겁쟁이처럼 교실에서 벌벌 떨지 않았다는 거야. 아이의 위험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부모님들처럼 선생님도 남자건 여자건 젊건 늙었건 떠나서 학생들 위험 앞에서는 더 대담해지고 냉철해진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사건 이 후로 모든 출입구에 도어록을 설치했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안심은 되더라. 우리 아이들도 엄마 아들도 좀 더 안전해졌으니까. 내 바람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제도가 개선된 건 없었어. 기사 댓글에는 현장의 선생님들을 비아냥 거리는 댓글이 주로 달렸어. 속상해. 


엄마. 

요즘 학교는 마음만 나쁘게 먹으면 학부모 인양 들어올 수도 있어. 시시티브이는 후속조치일 뿐이고. 사방에 위험요소 투성이야. 나쁜 사람이 정말 마음을 못되게 먹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칼 든 사람은 남교사나 꿈나무 지킴 이분들 뿐 아니라 경찰관님들도 막기 힘들어. 한 번씩 내가 생각해도 아찔해. 교대에서 호신술, 제압술을 가르쳐 주진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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