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고자질
엄마. 난 내가 비위가 좋은 지 알았는 데 아닌가 봐. 오늘 오랜만에 구역질을 했어. 아 내일 학교 가기 정말 싫다.
어버이날이 되면 한 번씩 이벤트성 프로젝트를 해. 물론 앞으로는 절대 안 할 거지만. 아이들에게 날계란을 줘. 그리고는 어버이날까지 3일 정도 학교에서 키우게 하지. 뭐 에디슨의 알 품는 이야기랑은 조금 달라. 그런 과학적인 메시지보다는 부모님이 널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를 노린 거지.
아이들에게 계란을 하나씩 주고 일단 자세히 보라고 해. 계란을 자세히 보면 흠이 나 있기도 하고 지저분하거나 점이 있거나 해. 그림 속 맨질하고 동글한 모습만은 아니지. 앞으로 네 아이가 될 거니 이름을 지어주라는 말에 몇몇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바꿔달라고 해.
여기서부터 시작이야. 자식이 흠이 있다고 바꿔달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라는 내 말에 아이들을 조금씩 진지해져. 떨어지면 깨지니까 다른 사람이 못 건들게 실수하지 않게 알아서 챙기라고 해줘. 우유갑을 씻어서 휴지로 채워서 넣는 아이. 꼭 쥐고 다니는 아이. 사물함에 넣는 아이들 각각의 모습으로 계란을 키워.
삶은 계란은 현실성이 떨어져. 물론 앞으로는 날계란은 절대 안 하겠지만. 꼭 하루에 한 둘은 깨먹거든. 굳이 내가 날계란을 증명 안 해줘도 돼. 깨진 계란을 치우며 서럽게 우는 아이들도 있고 앞으로 계란을 안 먹겠다는 아이들도 생겨.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야.
우리 반 사물함 위는 인조잔디매트가 깔려있어. 뭔가 푸른 느낌이 좋아서 깔아놨지. 아이들 작품 전시할 때도 뭔가 있어 보이더라고. 그게 이 사단의 시작이야. 우리 반에 조금 괴짜스러운 아이는 그 위에다가 계란을 올려놨어. 불안해서 다른 곳에 두면 안 되겠냐고 타일렀지만 소용없었어
“내 그럴 줄 알았다...”
맞아. 쉬는 시간에 가지고 놀다가 그 위에 깨뜨려 버렸어. 떨어뜨려도 안 깨질 줄 알았데. 더운 날씨에 날계란의 비릿한 냄새는 교실을 진동시켰어. 더욱이 인조잔디의 구멍 속에 계란이 기어들어가 닦을 수도 없었지. 결국 난 인조잔디매트를 버리기로 하고 그 아이에게는 사물함 위를 닦으라고 시켰어. 아이들이 가고 나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내가 다시 한번 더 닦았지만 계속 냄새가 올라왔어.
다음 주가 되었고 그날 일은 주말에 모두 잊고 하루를 시작했어. 점심시간이 되어 청소를 하는 데 그 아이는 칠판 담당이었지. 오늘은 걸래로 칠판을 닦아달라는 내 부탁에 아이는 해맑게 대답했어. 5교시가 되어 돌아온 교실은 아비규환이 되었어. 계란 섞은 내가 교실에 진동했지. 그럴 리가 없었어. 모든 계란은 금요일에 다 집으로 돌려보냈거든. 그리고 오전에는 안 나던 냄새였어.
아이들이 앞다퉈 제보를 했어. 칠판에서 냄새가 난다. 금요일에 계란을 깼던 그 아이가 걸레질해서 그렇다. 왁자짓걸 한 고자질 속에서 상황이 파악이 되었어. 아... 그 날 아이는 교실 걸레로 계란을 닦았고 그대로 사물함에 처 박아 둔 거야. 주말 내내 더운 날씨에 사물함에서 계란은 섞었을 테지. 오늘은 칠판을 닦는다고 그 걸레로 그냥 칠판을 닦았던 거야. 정작 본인은 비염 때문에 냄새를 못 맡았다나.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 때문에, 아니 칠판에 제일 가까운 내가 현기증이 나서 오후 수업은 다른 교실에서 할 수밖에 없었어. 친구들에게 한 마디씩 듣는 아이에게 나까지 혼내면 안 될까 봐 같이 닦으면 된다고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어. 닦아본다고 칠판에 물기가 닿을수록 냄새는 진해졌어.
과학실에서 초를 빌려서 초를 켜 두고
커피숍에서 원두가루를 빌려서 올려두고
물티슈에 퐁퐁을 묻혀서 몇 번을 닦고
마트에서 페브리즈를 사서 한통를 다 뿌려도
소용없었어.
아이들은 이것을 보고 ‘죽은 계란의 저주’라고 불렀어. 내가 먹는 음식으로 장난쳐서 그렇다나. 그런 것 같기도 해서 할 말이 없었어. 두고 추억할 일이 하나 생겨버렸네.
이건 뭐 혼 날일도 혼 낼 일도 아니야. 생각이 짧았던 다 내 잘못이지모. 근데 엄마 나 당분간은 계란은 못 먹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