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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Apr 23.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 지렁이맛젤리

서른두 번째 고자질

엄마. 옛날에는 엄마가 주는 거 다 잘 먹었는 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식성은 어딜 가나 칭찬받아. 못 먹는 게 없을 정도지. 근데 오늘은 조금 색다른 것을 먹었어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였어. 교생 선생님은 아이들 입장에서도 새롭겠지만 교생 선생님들에게도 학생을 실제로 만난다는 기대와 열정이 가득 찰 때지. 특히 첫 실습을 나갔을 때는 마치 벌써 선생님 된 듯이 설레면서도 실수투성이야. 그래도 매일 아침이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되었어


충남의 어느 학교로 실습 갔어. 나름 그 도시에서는 큰 학교라고 하지만 대도시에 비해서는 사실 아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해. 나는 4학년에 배정받았어. 이름 순으로 자르나 봐. 뭐 선배들이 편한 학년이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어. 사실 뭐가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모르겠더라고.


10살짜리 꼬마들이 와글거리는 교실로 들어갔어. 아이들은 이미 많은 교생 실습 경험이 있어서 신기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익숙해 보였어. 아이들은 왁자지껄하다가 자리에 일어서서 헛기침을 하시는 진짜 담임선생님의 모습에 바른 자세로 조용히 앉고는 했어. 당시는 정말 마치 마법 같았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공경심까지 생길 정도였어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다가왔어. 자기 이야기를 조잘 조절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어. 내 물건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했지. 머리를 묶어달라는 아이, 친구가 괴롭혔다고 고자질하는 아이, 어제 책에서 읽은 내용을 질문하는 아이,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멀리서 부러워하는 아이도 있었어


출근인지 등교인지 점점 헷갈릴 때쯤 아이들과 아침 봉사활동을 나갔어. 봉사활동이라고 해봐야 학교 주변 청소하는 거야. 오래된 그런지 운동장도 넓고 나무도 크고 많았어. 아이들과 손을 잡고 쓰레기를 줍고 있는 데 한 아이가 다가왔어.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지 늘 말없이 내 근처를 맴돌던 아이인데 먼저 말을 걸어왔어.


“선생님 벌레 잡았어요!”


아… 뭐 나도 어릴 적에 많이 잡아봐서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지는 않아. 아이 손에 들린 것은 방아깨비였어. 살살 쥐면 놓칠 새라 아이는 터지지 않을 정도로 꽉 잡아서 그런지 바둥거리는 방아깨비 입에서는 까만 보호액을 토해내고 있었지. 지금이라면 다시 놔주라고 했겠지만 그때는 칭찬이 능사인 줄만 알았어.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아이는 신이 났어.


주으라는 쓰레기는 안 줍고 그때부터 곤충채집이 시작되었어. 그 아이를 칭찬해줬더니 너도나도 쓰레기 대신에 곤충을 잡아 내 눈앞에 보여줬지. 절정은 지렁이었어. 아이 손에서 살아 움직이는 지렁이. 어찌나 맹렬히 버둥거리는지 무슨 채찍질을 하는 줄 알았어. 아이를 좀 진정시키고 돌아오는 데 그 아이가 다시 나를 불렀어. 


그리고는 아껴뒀던 젤리 하나를 그 손으로 꺼내 내 입에 넣어줬어.


응. 분명히 젤리였을 거야. 젤리.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 내가 벌레랑 젤리도 구분 못할 까 봐. 젤리 맞아. 근데 왜 지렁이 맛이 나는 거 같지. 왜 방아깨비 맛이 나는 거 같지. 운동장을 통째로 씹어먹는 맛이 나지. 순간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자연의 친구들이 하나씩 떠올랐어. 깨비, 댕이, 자리, 그리고 렁이…


거절할 수도 있었어. 근데 너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걸 어떡해. 

이제와 미소 짓게 하는 건. 그 속에서 올라오는 매스꺼움을 꾹꾹 눌러 참고 맛있다며 웃어주는 내 모습을 스스로 참선생님이라고 대견해했다는 거야. 

그때 그 마음 잊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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