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고자질
엄마. 나는 귀신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해줬지만 아니야 그래도 귀신이 제일 무서워.
아마 모든 사람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학교일 거야. 세상에 학교를 한 번이라도 안 다녀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군대. 출산. 직장. 여행 이런 거는 공감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지만 학교는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니까. 물론 세대별로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가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의 주제로 많이 쓰이나 봐. 특히 학교 괴담은 엄청나게 많지. 그런 게
내가 안 들으려고 해도 자꾸 들려. 잊어버리려고 하면 자꾸 생각나. 괜찮은 척하려 해도 움찔움찔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무뎌질 나이도 됐는데 말이야.
한 번씩 야근을 할 때가 있어.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어. 학교에서 조금만 더 하고 가자라고 마음먹으면 어느새 밤이 찾아와. 정신 차려보면 우리 교실에만 불이 켜져 있지. 교실 안에서는 무섭지 않아. 교실 불을 환하게 틀고 노래도 틀어놓으면 내 방처럼 익숙하고 아늑해.
문제는 교실에서 나설 때야.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서워. 쉬를 하는 데 왜 자꾸 뒤에 문이 열릴 것 같은 걸까. 갑자기 불이 꺼질 것만 같고 세면대 거울 속에는 꼭 누가 있을 것 같아. 무서우면 화장실이 가고 싶고 화장실 가려면 무서움이 밀려드는 악순환의 연속이야.
집에 가는 계단 복도도 만만치 않아. 불을 끄고 하고 나가야 하기에 늘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서 나가. 늘 걷던 복도인데 왜 끝이 길어 보일까. 그리고 저 끝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무엇일까. 옆반 빈 교실 책상에는 누가 엎드려있는 것 같아 쳐다볼 수가 없어. 비상등 조명은 착시를 일으키고 소화전은 왜 또 빨간 거야.
뛰어가면 누가 쫒아올까 봐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 내 콧노래가 설령 귀신을 부를까 아무 소리도 안 해. 나가기까지 오분도 안 걸리는 데 한 시간 같아 진땀을 빼. 퇴근을 알리러 당직 주사님께 가고 나서야 안심이 돼. 수고 많다는 주사님의 인사말에 내가 더 감사함을 느껴. 밤마다 순찰도는 주사님은 안 무서우실까.
바보 같지. 아이들은 이런 내 모습을 알까. 알면 뭐라고 할까. 낮에는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고 큰소리치던 선생님이 밤에는 무서워서 학교에서 화장실도 잘 못가. 사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도 잘 안 해줘. 내가 무섭거든. 아무튼 오늘도 귀신은 없었어.
그런데 말이야 엄마. 요즘에는 밤에 혼자 남아 일할 때 혹시나 복도에서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그게 차라리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었으면 좋겠어. 어릴 적 엄마가 해준 말이 이제 이해가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