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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Feb 25.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 개똥같은 날

열 일곱번째 고자질

엄마. 오늘은 개똥 같은 일이 있었어. 뭐 기분은 개똥이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해. 무슨 개똥 같은 이야기냐고? 그러게 오늘은 개똥 같은 날이네. 그럼 개똥 같은 이야기 한번 들어볼려. 


요즘 학교들은 지역사회랑 연계하여 시설을 위탁받거나 환원하곤 해. 시작부터 뭔 말인가 싶지. 학교가 주민들에게 개방된다는 거야. 당장 둘러봐도 울타리가 없는 학교들이 많아. 열린 학교라면서 있던 울타리를 부셔가면서 운동장과 학교 시설을 개방했어. 인도와 운동장 사이의 화단은 구청의 예산으로 공원화시키기도 했지. 사유지와의 경계에는 울타리가 있지만 공유지 쪽으로는 열려있게 되었어. 그러다가 최근에는 아동범죄의 위험 때문에 재설치를 하고 있어. 


사실 아침에 아이들이랑 청소 봉사를 하면 아이들이 버린 과장 봉지나 우유갑보다도 주민들이 버린 담배꽁초나 술병이 더 많을 때가 있어. 아주 개똥 같지. 가끔 이게 무슨 봉사활동이지 싶어. 어른들이 아니 종종 불량한 청소년일 수도 있겠군. 아무튼 그들이 아이들의 공간이 학교에 아무렇게나 버린 꽁초나 술병을 왜 어린아이들이 치워야 하는 거지. 


이게 정말 교육적인 걸까. 학교를 청소하는 일은 좋다고 생각해. 내가 생활할 공간을 치우는 일이고 꼭 자신이 버린 게 아니더라도 쓰레기를 주으면서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겠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들 손으로 사탕 봉지가 아닌 가래침 묻어있는 담배꽁초랑 먹다 남은 컵라면에 처 박힌 맥주캔을 치워야 하는 게 맞나 화가 났어.


울타리를 다시 설치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 학교는 돈이 없거든. 구청이나 교육청에서 예산이 내려와야 하는 데 쉽지가 않아. 설사 예산이 있다고 해도 이미 구청 예산으로 제작되어 개방되어있는 휴게시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애매해. 경고문을 붙여놔도 그런 사람들이 읽을 턱도 없고. 일등으로 출근하시는 교장선생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아시고 아이들이 보기 흉한 것들은 미리 치워주시곤 하셨어. 이제 와서 교장선생님 리스펙! 


어느 날 일이 터졌어. 그 날은 운동장에 개가 돌아다녀. 목줄도 안 하고 말이야. 몇몇 아이들은 귀엽다고 쫓아다니고 몇몇 아이들은 도망갔지. 큰 개는 아니었지만 위기에 몰리면 얼마든지 이빨을 드러내겠지. 아이들의 제보를 받고 출동을 했어. 아니나 다를까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소리 지르며 운동장에서 술래잡기 중이었어. 아이들을 교실로 보내고 개를 쫓았지. 그제야 밴치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나셨어. 아이들 위험하다고 목줄이라도 부탁한다는 내 말에 “우리 개는 착해서 안 물어요”라더라. 심지어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데 정서적으로 교육적으로 좋다나. 


아직 화내긴 일러. 참 아까 말 안 했구나. 아이들 아침에 청소 봉사할 때 개똥도 봐. 더럽고 병 옮을 까 봐 건들지 말라고는 하는 데. 화나지. 학교에 개똥이라니. 체육수업을 하다 보면 분명히 교육시간인데도 학교에서 개 산책을 시켜. 화단에 똥도 싸고 오줌도 갈겨. 쥐가 좋아하겠네. 그것도 거름이 된다고 하시려나. 점심시간에 놀다가 개똥 밟았다는 아이들, 그걸 놀리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봐. 학교에서 개똥을 밟다니. 모든 애견인들이 그렇진 않겠지. 하 반려동물이 본인의 정서적으로는 가족이겠지만 여기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데 말이야. 하아. 개똥이라니. 


아직 끝이 아니야. 최근 국어시간에 아이들과 설득하는 글쓰기를 공부했어. 주장과 근거를 적절히 제시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거지. 뭐 교과서에는 소풍 장소 주장, 짝꿍 바꾸기 주장 뭐 이런 것들이 주로 나와. 우리 반에 한 녀석 중에 자기 담임선생님 닮아서 그런가 살짝 엉뚱함이 지나친 아이가 있어. 나름 이뻐하는 아이야. 그런 엉뚱함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되리라 믿거든. 그 수업 유독 그 아이의 눈빛이 초롱했던 거 같아. 불안하게 시리. 


그 다음날 학교 입구에 대자보가 붙었어. 제목은 학교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 맙시다. 도화지에 손으로 삐뚤삐뚤 써 내려간 내용은 학교에 개가 와서 무서우니 목줄 해달라. 똥 싸면 치워달라. 하교하고 데리고 와달라는 내용이었어. 나는 직감했지. 이름은 안 적혀 있었지만 그 녀석이구나. 대견했어. 이렇게 실천하는 용기가 쉽지 않거든. 어디서 본걸 있어서 자체 수거일도 적었더라. 그래서 모른척했어. 사실 불법 게시물이지. 선생님한테 미리 허락을 받고 붙여야 하는 게 맞지. 


별 일 있겠나 싶어서 내버려 뒀는 데 별 일이 생겼어. 미처 못 봤던 게 아이가 자보만 붙인 게 아니라 운동장 건너 벤치에도 뭔가를 붙였더라. “여기는 개가 앉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앉는 곳입니다”라고. 앞뒤 상황을 빼고 보면 좀 공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 물론 아이가 하얀 종이에 빨간 글씨로 프린터 해서 코팅해서 붙였을까. 연습장에 사인펜으로 써서 테이프로 붙여놨더라고. 강아지 그림과 함께.


하아. 이게 그렇게 눈에 거슬렸나 봐. 학교에 교장실에 교무실에 일정한 간격으로 민원전화가 몰려와. 홈페이지에도 항의성글이 올라와. 주요 내용은 여기가 학교 땅이냐며 왜 주민편의시설에 개를 못 들어오게 하냐 였어. 엄밀히 말하면 땅은 학교 땅이야. 구청이 시설만 설치한 거지. 운동기구나 의자 정도. 알고 보니 주민중에 한 분이 벤치에 붙은 아이 작품을 애견인 카페에 올렸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서 항의를 결의했나 봐. 


상황을 뒤늦게 듣고 나서야 교장실에 가서 이실직고했어. 우리 반 아이고 이런 이유로 그리 했을 거란 말에 교장선생님은 화내는 대신에 웃으며 한마디 하셨어. “아이가 담임선생님을 닮았네요” 내 마음대로 이건 칭찬인 걸로 생각할래. 아무튼 하루 종일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전화기 앞을 못 떠나신 교장선생님께 조금 죄송했어. 결국 수업을 마침 후 나는 아이와 자보들을 다 제거했어. 아이는 마치 자기가 큰 죄를 진거 마냥 겁먹어있더라. 


제거 작업이 끝나고 그 벤치에 앉아 초콜릿 우유 한 잔 같이 하면서 잘 이야기해줬어.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넌 잘못한 거 없다고. 그리고 그 벤치에 붙어 있던 문제의 종이는 친절히 코팅까지 해서 쥐어줬지. 물론 절차상으로는 어설픔이 있었지만 아이의 생각과 행동은 틀린 게 하나 없었으니까. 그리고 불편함을 그냥 참기보다 굳이 바꾸려는 아이의 그런 마음이 자라면 우리 사는 세상도 바꿔줄 것 같았거든. 


엄마 나 애 하나 잘 가르쳤지. 이게 오늘 아주 개똥 같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날이란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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