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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인들의 고민(이었던 것...)

『혜성』- 제임스 설터



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까? 어려운 문제다. 이 뛰어난 스토리텔링, 뛰어난 문장.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




인물과 상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여기에 얼마 전에 맺어진 부부가 있다. 둘은 이미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아델, 남자의 이름은 필립.


아델은 친구가 많았다. 이혼하면서 집을 비롯한 많은 것을 받았다. 돈을 잘 벌었다. 충성이 그녀의 신조였다. 지난 8년간의 결혼 시절에서 '자신의 일이란 옷을 차려입고, 저녁을 준비하고, 하루에 한 번씩 대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필립은 '세상을 좀 얕잡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돈을 버는 것은 아델이 부동산에 투자해서 버는 정도에 불과했다.


상황 1) 아델의 비난

'자기 남편이 한 흑인 여자와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된' 여자가 푸념을 했다. 아델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필립은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을 거 아니오? ... 한순간 모든 게 불행으로 바뀔 순 없다고요.'라고 말했다.

둘의 갈등이 시작됐다.


아델은 필립의 과거사를 남들 앞에서 까발렸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버렸어요... 애가 셋이었어요.' 계속해서 필립을 몰아붙였다. 필립은 점점 궁지에 몰렸다. 그러면서도 아델이 비난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결국 필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황 2) 필립과 혜성

필립이 떠나자 아델은 남편을 두둔했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욕망을 자제할 수 없어 그런 거예요.' 그리고 밖에서 혜성을 보는 남편을 발견했다.

'들어가요.' 아델의 말이었다.

'내일은 안 보일 거야. 한 번뿐이야.' 필립의 말이었다.

결국 필립은 밖에 남았고, 아델은 집에 들어가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1. 작가의 바람?


나는 상황 2)에서 상당히 의아했다. 뭐지? 왜 아델은 필립을 비난하다가 마지막엔 필립을 두둔했지? 아델이 마지막에 발을 헛디딘 것은 무엇 때문이지?


우선 이 질문을 생각하기 전에, 드러난 인물과 갈등 구조부터 이해해야 한다.


아델은 능력이 있는 여자. 그러면서 '충성', 우정과 같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필립은 능력이 없는 남자. 순간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를 한다. 후회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아름답게 생각한다.


두 인물의 갈등은 다음과 같은 관념의 갈등을 상징한다.

지속적이며 사회적인 가치 vs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감정


이는 마지막, 혜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필립은 일생의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한다. 아델은 혜성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나는 이렇게 인물과 갈등 구조를 이해했다. 이후에 위의 상황2)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는 여기에서 작가의 소망이나 바람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1) 아델이 남편을 두둔하려는 시도

이것은 사회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필립과 같은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2) 아델이 '어둠' 속에 있는 남편을 떠나 '환한' 집으로 향하려다가 발을 헛디뎠다.

이것은 사회적인(=밝은) 아델이 개인적인(=어두운) 필립을 떠나는 장면이다. 발을 헛디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아델은 밝은 곳으로 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남편 없이 혼자 돌아가는 것에 대해, 내면의 걸림돌이 있다.' 이를 상상을 곁들여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지만, 혼자서는 그게 망설여진다. 결국 아델도 개인적인 가치를 고민하는 인간이다'


정리하면,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아델)이 개인적인 가치에 대해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결국엔 스스로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소설에서는 흔하지만 현실에서는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상식은,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작가가 소설을 쓰던 미국에서나 통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상황2)에서 보여진 아델의 행동은 작가가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까?


'아델의 행동은 작가의 바람이다.'




2. 작품엔 각 시대의 고민이 담겨있다.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vs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상식 vs 감정
기존관념 vs 본능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구조는 이전에 읽었던 『스토너』에서도 반복된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두 가치 속에서 방황한다. 하나를 추구하면 하나를 잃고, 반대를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언제나 불만족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 참고 ( https://brunch.co.kr/@rhdwhtjdwkd4mbd/2 )


재밌는 것은 두 작가의 활동시기가 겹친다는 것이다. 『스토너』의 작가는 1922년에 태어났고, 『혜성』의 작가는 1925년에 태어났다. 두 작가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은 세대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에선 '히피'의 바람이 불었다.


히피(영어: hippie 또는 hippy)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 틀에 박힌 가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의미에 따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하고, 기성사회의 성적 억압과 관습적 도덕을 해체함으로써 개방적인 성의 표현을 통해 친밀성과 이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성취하려고 했다. (from wikipedia)


『스토너』의 주인공 스토너는 불륜(자유로운 사랑)의 경험을 긍정적인 체험으로 느꼈다.

『혜성』의 주인공 필립 역시 불륜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불륜으로 인한 타인의 불행에 개의치 않는다.


나는 두 작품에서 공통된 갈등 구조와 관점을 보았다. 그리고 두 작가의 공통된 시대적 배경을 보았다. 두 작가가 경험한 시절의 미국 젊은이들, 그들의 반항적 태도가 글에 깊이 남아있음을 보았다. 나는 여기서 '작품엔 각 시대의 고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생각이 적용되는 경우가 또 있다. 20세기 초중반 일본과 한국의 작품에서도 공통된 관점이 발견된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다! 이 점을 감안하도록!)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 염상섭의 작품들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시바타 쇼의 작품. 이 작품들에선 '공산주의(=혁명)'이나 '저항(일제강점에 대한 저항, 전후 서양문화에 대한 저항)'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인물들은 이상(공산주의)과 현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베스트 셀러들을 읽어보면, 핑크빛 사상이 가득하다. 책의 내용은 별로 관련이 없지만, 글의 서두나 후미에서 어떻게든 페미니즘과 엮어보려는 작가들의 시도도 종종 보인다.



'작품엔 각 시대의 고민이 담겨있다.'

이 작품엔 히피 문화의 고민이 담겨있다. 히피는 '기성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성적인 억압을 해체'하려고 했다. 작가가 히피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앞서 1.에서 추측한 '아델의 행동은 작가의 바람이다', 이 생각에 더욱 힘이 실린다.




낡은 고민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한국인)에겐 더 이상 '공산주의', '외세에 대한 저항' 이런 것들이 자극적이지 않다. 마찬가지로 모든 가치관념을 해체하고 성적인 억압을 해체하려는 시도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정도이다. 히피를 겪은 미국인들은 이미 노인이 되었다. 기성세대에 저항했던 그들이 아주 오래 전에 기성세대가 되었고, 벌써 많은 히피족들이 현실을 떠나 역사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당시 그들의 고민은 더 이상 현재 그들의 고민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고민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지금 우리의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수많은 문제들.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자극적이고, 역사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 '그렇게 대단한 문제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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