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l 31. 2023

나아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큇(QUIT)>

나는 원래부터 독서 취향이 문학 쪽에 쏠려 있기는 하지만 특히나 자기 계발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은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충고랍시고 책으로 엮은 것이 눈꼴시어서다. 그럼에도 넓게 보면 자기 계발서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큇>을 집어 들게 된 것은 '자주 그만두는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하는가'라는 부제에 끌려서였다. 끈기를 가지고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감히 '그만두라'고 말하는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작가의 이력이 재미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인지과학을 공부했다는 그럴듯한 이력에 더해, 세계 포커 대회에서 우승한 포커플레이어라고 한다.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언제 레이즈를 하고 어느 타이밍에 다운해야 할지 매 순간 판단해야 하는 포커플레이어라면, '그만두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여러 부연 설명을 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책의 첫 번째 장에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우리는 언제 그만둘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그 판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결과는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날 에베레스트산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기억하지만 규칙에 따라 중도에 하산한 허치슨, 태스크, 카시슈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들이 유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우리는 역경에 대한 인간의 반응 가운데 어느 한 측면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도전하는 사람들"만을 생각한다. 계속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비극이든 아니든 영웅으로 기억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반환시간을 지키지 않고 계속 버티면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다. 정상에 오르다 포기하고 하산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록되기는 하지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 <큇(QUIT)> 중에서


매몰비용의 함정에 갇혀 손절할 타이밍을 놓치고 존버하고 있는 주식투자자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뼈를 때리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수술은 일련의 선택의 과정이다. 어디로 진행해야 할지, 무엇을 잘라야 할지, 어떤 기구를 선택해서 무슨 술기를 해야 할지, 외과의사는 매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대부분의 선택은 수련의 과정과 경험이 모범답안을 알려주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지만, 가끔씩은 경험만으로 정답을 알 수 없어 고민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선택은 '더 진행할 것인가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다.


비의료인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수술이라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다. 내가 주로 수술하는 대장암을 예로 들자면 주변 장기로의 침범이 너무 광범위하여 절제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수술 전 검사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수술을 시도해 볼 것인가 중단하고 포기를 선언할 것인가를 수술 도중에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을 '그만둔다'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다. 더 진행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앞으로 발생할 상황들이 내 능력으로 수습이 가능할 것인지 미리 완벽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환자의 남은 인생을 좌우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늦은 오후, 당직 전공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xx병원에서 전원 문의가 왔는데요."

"무슨 환자인데?"

"기저질환 없는 75세 여자 환자이고 상행결장암 폐색이라고 합니다."

"어, 오시라고 해."

일단 받아서 수술을 하든 스텐트를 넣든 판단할 일이었다.

"교수님, 그런데요..."

전공의 선생이 뭔가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왜, 무슨 문제 있니?"

당직 2년차가 마치 자기 잘못인 양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수술을 하다가 말고 배를 닫고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무슨 소리야 대체?"

"그쪽 병원에서 일단 응급으로 배를 열었는데 십이지장 침윤이 있어서 더 진행 못하고 그대로 배만 닫아서 보내겠다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첫 번째로 느껴진 감정은 황당함이었고, 곧바로 뒤를 따른 감정은 분노였다. 배를 열어놓고 수습을 못해서 대학병원으로 보내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보냈어야지. 내가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나 싶어 '우리는 못 받겠으니 알아서 수습하시라고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수술방에서 배를 열어둔 채 다급하게 전원할 병원을 찾고 있을 집도의 선생님과 초조하게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환자 보호자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쩌겠니. 얼른 오시라고 하고, 마취과에 상황 설명하고 미리 수술방 준비해 두자."

일단 전원을 받기로 하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배를 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암이 십이지장까지 침범한 것을 확인했을 때 집도의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까. 여기서 수술을 중단했을 때 환자와 보호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뻔히 예상됨에도 수술을 '그만 진행하고' 전원하기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고뇌하셨을까. 뒷수습이 안 될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무책임이다. 수술을 중단하고 전원을 보내야겠다는 결정은 책임회피가 아니라 분명히 용기였다.


"모든 결정은 어느 정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그 불확실함의 원인은 두 가지이며, 우리가 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저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는다. 첫 번째 원인은 세상이 확률적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확률적이라는 말은 세상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중략) 두 번째 원인은 우리가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고려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 <큇(QUIT)> 중에서


잘 그만두는 것은 외과의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과감히 그만두는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