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처한 사회 경제적 여건에 따라 (물론 후자의 경우가 훨씬 흔하지만) 일찌감치 특정 직업을 선택했다가 결국에는 그 분야에 매여 이른바 전문가로 살게 된다. 직업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 <폴리매스> 중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일을 할지 정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누구나 고민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올바른 답을 찾기도 쉽지 않고 내가 찾은 답이 올바른지 알기조차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찾은 해답은 의사이고, 그 중에서도 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지만, 그것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내가 결정한 의사로서의 삶은 사회적 여건 혹은 시류에 편승한 것이 결정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10% 정도가 내 관심사와 일부 일치할 것인데 사실은 그마저도 주요 관심사와 아주 가깝지는 않아서, 가만 보면 나는 대체 내가 제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것을 왜 직업으로 선택했을까 싶다. 40년 인생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 제일 잘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수학과 물리학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정치, 경제, 역사, 인문학 뭐 이런 분야가 훨씬 더 재미있는 것 같고, 교수가 되어 학교에서 또 학회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남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고, 이런저런 문학상이나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 글쓰기도 재능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 데다가, 절대음감에 좋은 목청을 타고난 것을 보면 음악적 재능도 남들에 크게 뒤지지는 않는 것 같으니, 가끔은 작가나 작곡가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미 외과 의사라는 직업이 내 존재를 규정하고 있고, 나는 그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을 만한 용기는 없다. 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고 꿈을 좇아서 새로운 길에 도전하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배우 허성태님 같은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폴리매스>의 작가는 사회가 고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한 개인은 세분화된 능력만을 집중적으로 연마하고 발휘하기를 요구받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이 사회는 다양한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일견 설득력이 있다 싶다가도, 막상 내 눈앞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혼란스럽다. 외과 의사만 해도 마찬가지여서 에브리올로지(every와 -ology를 합성하여 만들어낸 말)를 전공으로 삼아 특정 전문 분야 없이 모든 수술을 혼자서 다 하던 것은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이지, 요즘은 전문 분야가 점점 세분화되다 보니 외과 내에서도 내 전문 세부전공이 아니고서는 어지간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니, 외과 의사라고 다 같은 외과 의사가 아니게 되었다. 두루두루 할 줄 아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잘 하는 것이 대접 받는 세상이다. 옛말에도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가 없다지 않았나.
물론 세상은 변하고 있고, 내 세대와 자식 세대는 전혀 다르겠지만.
요즈음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어찌어찌 자리를 잡고 살고 있고 앞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내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앞에 두고 일생일대의 저울질을 해야할 시기가 올 것인데, 아이들을 각자에 맞는 적절한 인생의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세상은 변화에 발맞추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20세기의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어른들 때문에 내 아이들이 20세기에나 어울리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지는 않을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는 부모로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은 많은데 답을 모르겠다.
인간은 인공지능 덕분에 수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정리해야 하는 과중한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기술 전문화 영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래의 지식에서 생물적 뇌가 담당할 영역은 다채로운 지식을 동시에 이용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여러 지식을 통합하고, 정리하고, 융합하고, 연결하여 인간의 고유한 지혜와 이해를 수립하는 일이라야 한다.
- <폴리매스> 중에서
챗GPT를 써 보니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난다. 기본적으로 말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다보니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같은 있지도 않은 것을 질문해 놓고는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내는 챗GPT를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더라만, 그럴수록 더더욱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천차만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최근 쓴 논문에 챗GPT를 유용하게 활용했는데,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조각들을 어설픈 영어로 쓴 다음 챗GPT에게 논문에 쓸 수 있도록 제대로 고쳐써 달라고 하면 딱 내가 원했던 문장을 논문에 걸맞는 고급 영어로 만들어 주는데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내 생각을 얘가 미리 읽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오싹한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결국 사람의 역할은 <폴리매스> 작가의 말처럼 '통합하고, 정리하고, 융합하고, 연결하는' 데 있을 것이며, 이런 능력을 가진 자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느냐는 거다. 통합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타고 나는 것 아닌가?
지능이 매우 뛰어난 다수의 영재들은 하나의 특정 분야에 그들의 역량을 집중하도록 매우 일찍부터 격려 받는다 (아니 거의 강요받는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폴리매스 자질(즉 '다중 잠재력')을 지닌 영재들도 이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때가 많다.
- <폴리매스> 중에서
'다중 잠재력'이라니. 얼마나 축복받은 '타고난 능력'인가. 이 책은 수많은 폴리매스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이야말로 다양한 잠재력을 타고난 일종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폴리매스 자질을 지닌 사람들이 본인의 다양한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특정 역량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상은 어느 한 분야에도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지 못한 인류가 훨씬 많지 않은가 말이다.
내 아이는 폴리매스가 아니어도 좋으니 한 가지라도 잘 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통합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로 키우는 길이란 정말 요원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