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 아들의 엄마 길들이기
이제는 훌쩍 커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두 아들.
친정 엄마가 거의 도와주셨지만, 아이들 어렸을 때 아이 둘 키우며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 소문난 워커홀릭인 남편은 어느샌가 육아를 아예 손 놓아 버렸다. 주말까지 출근과 출장으로 가득 채운 그는 승승장구했지만 나는 그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주중엔 회사 가느라 친정 엄마가 도맡아주셨지만, 주말엔 나 혼자 터울 있는 아들 둘의 주말 일정을 소화하느라 전전긍긍했다.
덕분에 나는 환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뚜벅이를 고수하던 신념도 버려야 했다. 장롱면허를 십 수년 만에 꺼내 전국 방방곡곡 운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들 둘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스포츠 경기 본다고, 한다고 얼마나 다녔던지.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데리고 여행은 또 얼마나 다녔던지. 언젠가 공항에서 만난 어느 선배가 혹시 싱글맘 됐냐고 조심스레 물어본 적도 있다.
그 당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지만, 아이들과는 숱한 추억과 우정과 사랑을 차곡차곡 쌓아갔는데, 우리의 여행에 남편이 없는 게 늘 야속하고 아쉬웠다. 이 예쁜 아이들 시기를 나 혼자 보고 지나가다니… 셋으로 딱 맞춰진 우리의 생활과 여행과 모든 것이 언젠가 그가 돌아와 넷이 되면 어색할 것 같기도 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인지, 정말, 그가 사회생활에서 한 풀 꺾여 돌아와 시간 여유가 많아지자 우리 집에서는 엇박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시간이 많아진 아빠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조금 어렵고 불편해하기도 했다. 싫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숱하게 부대끼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은 부모 자녀 사이에서도 꼭 필요했던 것이다.
남편에게 시간 여유가 생기자 내가 제일 먼저 분담을 청한 것은 아이들 라이드였다. 그동안은 한 번도 라이드 당번을 번갈아 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고, 나 혼자 독박이었는데, 둘이 나누니 내 주말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종종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 아이가 내게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단다.
“엄마, 엄마가 해줄 수 있을 때는 그냥 엄마가 차 태워주면 좋겠어”
“왜? 운전 노동은 좀 나눠서 하자. 엄마 너네 어릴 때부터 혼자서 다 했잖아. 아빠에게도 기회를 주자 “
”그게 엄마의 특권이야! 특권이라고 생각해! (웃음)
그런 거 있잖아. 진짜 친한 친구끼리 있으면 억지로 뭘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냥 별 말 안 해도 웃게 되는데,
아빠가 싫어서가 아니라, 어색해. 거의 말없이 가는데 그게 어색하면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해.
엄마랑은,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 “
하…
이 무슨 또 엄마의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냐,
돌봄 노동과 희생은 왜 여성에게만 주어지느냐 하는 나의 논리적인 항변들은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아이를 보고 웃으며 다짐하고 있다.
‘그래, 너랑 나랑 이렇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겠어? 해 주자‘
고 2 아들이 엄마를 길들이는 참 쉬운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