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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Nov 11. 2022

나의 산타에게

레이먼드 브릭스<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세 가지 정도 있다.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 방학’ 적고 보니 더 생각이 나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온 가족이 꼭 케이크를 먹고,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듯 촛불을 껐다. 그 의미를 잘 몰랐던 어린 시절에도 항상 그날은 그렇게 했다. 나이가 들어 장성한 딸들이 회사로 모임이나 연애로 바빠진 시간에도 의례적으로 그날은 반드시 모여 케이크를 불고 껐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엄마에게는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었을 거 같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 살림에 외삼촌 집에서 지내야 했던 엄마는 가족들이 모여 맛나 음식을 먹고, 다 같이 하하호호하는 것이 좋아 보였을 것이다. 당시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는 것은 졸업식이나 입학식 날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귀한 것이었다. 1년에 딱 5번 가족들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만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는데, 그날을 무척 기다렸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케이크와 촛불과 선물을 생각한다. 엄마에게 선물이 들어갈 양말이 없다고 칭얼대던 어린 내 모습과 동생의 모습도. 25일 아침 일어나 언제 들었는지 산타가 내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양말은 아니지만 머리맡에 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산타도 마법, 기적들을 잘 믿지 않는 나이가 되어 갈 때도 우리 집 만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이어졌다.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입장이 되자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두 아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좀 더 근사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장식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물론 처음 몇 년간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까지. 누군가가 기억해줄 무엇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은 이런 것일까. 잠든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이번에는 목긴 양말에 선물을 넣으며 생각해 보았다. 엄마에게도 어쩌면 가족들과 함께 보내던 크리스마스가 두근거리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크리스마스의 순수한 의미와 성 니콜라우스의 여러 선행을 알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산타할아버지를 믿었던 나에 비해 아이들은 금방 산타의 존재를 알아챘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잔치 후 의기양양하게 선물을 들고 온 둘째에게 초등학교를 들어간 큰 아이가 옆에 얹으라고 손짓했다. 그때가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둘째가 6살이었다. 큰 아이는 둘째를 옆에 앉혀 놓고 이렇게 말했다.

“희승아, 너 오늘 산타 만났어?”

“응” “네가 갖고 싶은 선물 받았지?”

“응” (자랑스럽게)

“엄마가 착한 일 많이 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했지?”

“응”

“그런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어?”(놀람)

“오늘 온 산타할아버지는 한 30살 정도 된 아저씨가 산타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와서 엄마가 유치원에 갔다 준 선물을 대신 꺼내 준 거야.”

“어?”(다시 놀람,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착한 일 많이 안 해도 돼” (아들 왜 결론이 그렇게.....)

둘째는 그렇게 형에 의해 산타할아버지의 환상을 와장창 깼다. 큰 아이가 말하는 정확한 사실관계에 할 말을 잃은 나는 그 뒤에  수많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담은 책들을 읽어줬다. 하지만 둘째 아이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다시 붙여지지는 않았다. 차라리 산타할아버지보다는 선물을 믿는 편에 가깝다.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 중에 레이먼스 브릭스의 <산탄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제일 깔깔거리고 웃었던 책이기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너그럽고 인자한 산타의 모습과는 좀 거리가 멀다. 레이먼스 브릭스는 우편배달부 아버지를 두었고, 노동자 계급의 정서를 반영한 여러 작품들을 발표했다. 물론 그의 작품 중 많은 이들이 <눈사람 아저씨>를 떠올릴 것이다.

눈 오는 날에 선물 보따리를 등에 지고, 옆에는 보온병을 든 가방을 메고 있는 산타의 모습은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여느 산타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인다. 책으로 들어가면 할아버지는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면 “아니, 또 크리스마스잖아!”라고 말한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말이지만, 표정을 보니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은 너무 싫어!”라고 말하는 산타라니...... 모두가 산타를 만나고 싶어 하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데. 순록에게 여물을 주고, 내복을 껴입고, 장화를 신고, 머리를 감는 산타의 모습은 정말 일상적인 모습이다.


“여름이나 빨리 오지!”라고 말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산타 할아버지. 다다른 굴뚝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빠지지만 결국 다 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중간에 우편배달부는 만나는 데, 작가의 아버지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새벽에 우편배달부 일을 하는 아버지기 한번쯤은 산타를 만났을 수도 있다는 작가적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의 산타는 1인 사업자이자,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수많은 일을 혼자 하고 도시락을 싸고, 야간 노동을 하면서 잠시 휴식 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라디오를 듣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숙명처럼 그 일을 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불평불만이 곁들여진다. 아이들도 착한 일을 검사하고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평가자나 심판 같은 산타가 아닌 자신의 노동을 불평하면서도 해내는 산타에게 박수를 쳤다. 읽어주는 나도. 크리스마스는 다 같이 즐기는 하나의 축제이지만 그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을 생각해보고,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때 자신의 부모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그날의 풍경이 늘 어렴풋이 떠오른다. 작은 상에 둘라 앉아 조그만 케이크에 초를 켜고,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캐럴을 부르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아직은 젊은 엄마와 아빠가 그리고 어린 나와 동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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